[사설] 대북정책, 실용주의적 접근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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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임 통일부 장관에 류우익 전 주중대사가 내정됐다. 류 내정자의 첫 소감은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유연성을 낼 부분이 있는지 궁리해 볼 생각”이라는 것이다. 물론 류 내정자 역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할 생각”이라고 밝혀 대북정책의 급격한 방향선회엔 일정한 거리를 뒀다. 그러나 대북 강경 입장을 고수하던 현인택 장관이 경질되고 평소 ‘실용주의적 남북관계론’을 견지해 온 류 내정자가 임명됨으로써 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11월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해 남북한 사이에 무언가 진행 중인 사안이 있음을 시사했다. 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북한-남한으로 연결되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동의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저돌적 실용주의자로 알려진 류 내정자의 기용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남북관계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악화되기만 해왔다. 물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부터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주로 북한의 대남 도발이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지나치게 원칙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남북관계의 장기 경색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해가 되는 측면마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류 내정자의 말처럼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성을 발휘하는 실용적 입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 사이에 풀어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끌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이와 관련해 남북한 사이에 이 문제를 둘러싼 협의가 진행 중임을 시사하는 조짐도 있다. 북한의 언론 매체들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이 최근 사라진 점이나, 홍준표 대표의 발언 등이 그것이다. 또 김태우 신임 통일연구원장은 ‘정부 대 정부 차원이 아니라 반관반민 차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괜찮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하다’는 실용적 입장에서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사실상 북한에 의해 몰수된 금강산 관광 독점권도 다시 복구해야 하며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 재개도 시급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섬으로써 궁극적으로 남북한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목표다. 그러나 남북 분단의 역사를 돌이킬 때 그 목표에 이르는 지름길이 있다고 믿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신기루 같은 지름길을 찾으며 방황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에서 차근차근 매듭을 풀어나가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대북정책에도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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