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는 급락 장세 ‘안전띠’… 뭉칫돈 쏠림 뚜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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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시장 상황이나 경기에 의존하기보다 기업이 갖고 있는 본질적 가치에 주목하는 투자’.

 가치투자에 대한 정의다. 요즘 이런 가치투자에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달 초 시장이 급락한 뒤로 상대적으로 더 많은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어서다. 돈뿐이 아니다. “가치투자를 실현하겠다”며 자산운용사를 나와 투자자문사로 옮기는 사람도 여럿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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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때 일수록 본질적 가치 주목 #가치주 펀드, 8월에만 2800억 유입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달 1~30일 가치주에 주로 투자하는 가치주 펀드의 수익률은 -12.32%를 기록했다. 얼핏 보면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다른 펀드와 비교하면 그렇지 않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이보다 낮은 -14.63%에 그쳤다. 코스피 지수가 14.24% 하락하는 등 증시가 주저앉은 데 따른 것이다. 가치주 펀드 입장에선 장대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빗줄기에 옷이 덜 젖은 셈이다.

 개별 펀드로는 KB자산운용의 ‘KB밸류초이스[주식] A’가 수익률 -4.21%를 기록, 최근 급락장에서 전체 국내 주식형 펀드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KB밸류포커스자(주식)클래스 A’(-9.09%), ‘한국밸류10년투자 1[주식](C)’(-10.11%) 등도 수익률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다 보니 가치주 펀드에 투자되는 자금이 늘고 있다. 지난달 1~30일 가치주 펀드에 순유입된 돈은 2800억원에 달한다. 지난 7월 237억원이 빠져나갔던 흐름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김후정 동양종금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가치주 펀드에 자금을 맡기는 투자자는 대체로 위험에 민감한 투자성향을 갖고 있다”며 “최근 증시가 급변하니까 수익률 하락 위험이 낮은 가치주 펀드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로 시중 자금이 모여드는 것도 가치주 펀드에 투자되는 돈이 증가하는 데 일조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29일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 2조4567억원이 순유입됐다. 지난달 10일 이후 13거래일 연속 순유입 흐름을 보였다. 이진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펀드로 자금이 유입되는 규모는 유출되는 규모의 4배”라며 “펀드로의 자금 유입 강도가 이 수준을 넘은 건 ‘펀드 르네상스’ 시대로 불렸던 2007년 7월과 11월 두 차례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분간 순유입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치투자의 흐름은 인력 이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자산운용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펀드매니저가 가치투자의 가치를 좇아 투자자문사에 새로 둥지를 트는 경우가 많아졌다. 각종 연기금 펀드를 우수하게 운용해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로 인정받고 있는 김홍기 GS자산운용 팀장은 최근 사직 의사를 밝혔다. 아크투자자문 대표로 옮기기 위해서다. 그는 이직 결정과 관련해 “아크투자자문이 다른 곳과 다르게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자문사”라며 “내 운용 철학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가치투자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는 김준연 전 유리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는 대성투자자문을 거쳐 최근 세븐아이즈인베스트먼트 주식운용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증시가 불안한 상황에서 자문사에 도전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건 앞으로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란 기대감의 발로로 볼 수 있다. 자문형랩이나 한국형 헤지펀드 등이 더 활성화되면 운용사보다는 자문사에서 자신의 투자철학을 실천하기에 더 효과적일 수 있어서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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