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문제는 ‘교육의 정치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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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 시절 경쟁자를 사퇴시키는 조건으로 수억원을 지불했다는 의혹은 메가톤급 태풍처럼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의 도덕성이나 유·무죄를 떠나 이는 우리의 교육계에 큰 불행이자 비극이다. 본인은 ‘떳떳하기에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 했지만, 실제로 이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시교육감의 업무가 원활히 수행되지 않을 경우 그 여파는 고스란히 약 2200개의 학교, 136만여 명의 학생, 그리고 8만 명에 가까운 교사들에게 미치게 된다. 가공할 혼란이 교육현장에 야기될 수도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이 정도인데도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이 사건으로 인한 표의 득실이나 계산하고 있으니 심히 개탄스럽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고사하고 문제의 본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곽노현 교육감의 도덕성이나 그 행위의 적법성에 대한 논의를 하지 말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향후 이런 사태의 방지를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곽노현 사태’의 핵심이자 근원은 교육의 지나친 정치화 현상이다. 현대 교육에서 정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과도한 정치화는 교육의 본질을 훼손한다. 이 사건 이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육감직선제의 가장 심각한 폐단도 바로 이 제도가 교육의 현장을 정치화함으로써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왜곡한다는 데 있다.

 교육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설명하는 데는 학술적 전문용어가 필요치 않다. 학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우선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이다. 공부란 결국 학생들의 지적 발달을 위한 훈련이다. 물론 여기서 지적 발달이란 학업성적의 향상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성적 좋은 아이들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제공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적성이나 능력수준에 따라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가르치는 장(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교사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만은 아니다. 아이들의 인성을 지도하는 역할은 지식전달 못지않게 중요한 교사 본연의 임무다. 그리고 지식 전달자로서의 전문성을 존중해 주듯 학생들의 인성지도에 대해서도 교사들에게 훈육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교육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우리 사회의 관심은 교육감직선제에 편중되어 있었다. 이 제도는 주민들의 교육주권을 실현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을 위해 출발한 교육지방자치제도를 진일보시킨다는 명목 하에 지난 정부에서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도입 시의 기대와는 달리 교육감직선제는 교육계를 혼탁한 선거판으로 전락시키고, 중앙정부와 교육지자체 간의 힘겨루기를 야기했다. 이로 인해 학교와 교사들은 혼란에 빠졌고 학생과 학부모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와중에서 정작 교육 본연의 기능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아이들의 학습향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공중도덕이나 질서의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고민은 실종되고, 무상급식과 같은 지엽적 쟁점들이 논의를 주도했다는 뜻이다. 이 제도의 도입을 주도한 세력이 교육의 본질보다는 정치적 득실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다.

 교육감직선제를 포함한 교육에 관련된 그 어떤 제도라도 교육의 본질에 위배된다면 과감히 폐기됨이 옳다. 그 대안을 모색함에 있어서도 교육 본연의 기능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교육의 정치화는 이득보다는 폐해가 더 크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