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 소장의 한국 자동차 비사 秘史 ⑥ 한국학생 오너 드라이버 제1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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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 살 때 큰아버님이 영국제 자동차를 사오셨지. 운전사가 없어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인 운전사를 데려왔는데, 제복을 입고 집안 어른들을 태우고 다녔어. 그 차가 집에 올 때는 어른들 몰래 운전사에게 태워 달랬지. 집안 마당을 도는 정도였지만 말이야.”

 윤보선 전 대통령과 차의 인연은 이렇게 소년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가 1897년생이니까 처음 차를 탄 것은 1906년 전후다. 그의 큰아버지 윤치오는 일본에서 유학해 일찍이 개화 문명에 눈을 떴다. 이후 대한제국 학무국장과 종2품 가선대부라는 높은 벼슬자리를 지냈다. 윤 씨 가문에 따르면 윤치오는 학무국장 재임 당시 영국에서 자동차 한 대를 도입해 타고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동차 이전의 신식 탈것인 자전거도 제일 먼저 탔던 소년 중 하나다. “내가 접한 최초의 바퀴는 당숙인 윤치호 어른이 미국에서 갖고 온 자전거였을 거야. 어른 자전거여서 한쪽 발을 차체 사이에 넣고 페달을 밟으며 탔지.” 이 시절 사람들은 자전거의 신기한 모습을 보고, ‘윤 씨네 축지 기계’라고 불렀다. 윤치호는 구한말 학부협판(지금으로 치면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개화의 선각자다. 영어·프랑스어·중국어·일본어에 능통한 지성인이었다.

대통령 전용차를 타고 이동 중인 윤보선 전 대통령.

 명문가에서 태어난 윤 전 대통령은 일본 도쿄에서 공부하다 귀국했다. 21세 때인 1918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19년 3.1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에는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모여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때 어른들은 아직 어린 축에 드는 그에게 “자네는 선진국에 나가 공부를 더 한 다음 독립운동을 하라”고 충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그 길로 영국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22세 때인 19년 중국인 옷차림으로 일본 경찰의 검색을 피했다. 가까스로 42일 만에 프랑스의 마르세유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한 지 2년 뒤 그는 이탈리아제 검은색 ‘피아트’를 꽤 비싼 400파운드를 주고 샀다. 앞좌석에 둘이 탈 수 있고, 짐을 싣도록 좁게 마련된 뒷자리에도 임시로 좌석 하나가 있는 컨버터블 스포츠카였다. 셀프 스타터가 없어 쇠막대기식 핸들을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걸어줘야 하는 3단 기어의 피아트였다.

 그는 8000명이나 되는 에든버러 대학생 중 유일한 오너 드라이버였다. 학생들의 인기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즉 한국인 대학생 오너 드라이버 1호가 된 셈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드라이브를 했다. 이 차를 샀을 때 영국의 자동차 판매 회사에서 기술자가 나와 1개월간 윤 전 대통령에게 운전을 가르쳤다고 한다.

 한번은 시골로 여행을 가는 길에 기분이 좋아서 스피드를 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열살 안 된 아이가 뛰어드는 바람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또 한번은 서둘러 시내를 빠져나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교통 경찰에게 잡혔다. 경찰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벌금 스티커를 떼려 했다.

 “서툴러서 그러니 한 번만 봐 주시오” 하고 사정을 했다. 경찰은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면서 놓아줬다. 그는 일생 동안에 자동차 교통 법규를 두 번밖에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다. 에든버러 유학생 시절 피아트를 탄 것으로 해외에서의 오너 드라이버 생활은 끝을 맺는다. 전공이 선사(先史)시대 고고학이라 스페인과 프랑스의 유적을 찾을 때면 주로 기차 여행을 많이 했다. 그는 해방 후 귀국해 영국제 오스틴을 타다가 서울시장, 상공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낼 때는 미국제 지프를 탔다. 오스틴을 탔던 시절이 마지막 손수 운전이었다. 그가 관직 생활을 할 당시 장관이나 국회의원 모두가 지프를 타고 다녔다. 6.25전쟁 동안 부산으로 피란 가 적십자사 총재로 일했을 때는 영국제 랜드로버를 탔다.

 “독일제 딱정벌레 폴크스바겐은 내가 제일 좋아한 차였지.” 신한당 총재 시절에는 미국제 크라이슬러 8기통 차를 탔는데 기름을 너무 먹어 얼마 안가 폴크스바겐으로 바꿔 탔다. 대통령 선거 때는 국내에서 조립한 현대의 69년형 ‘포드20M’을 타고다녔다. 이렇게 그는 자동차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탔던 소년이었고, 다양한 자동차를 탔던 대통령으로 유명했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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