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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로 성지 찾는 사람들...신앙의 힘은 위대했다

중앙선데이

입력

1 포탈라궁.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인도 대륙이 아시아 대륙에 충돌하며 부풀어 오른 땅, 티베트.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Tenzin Gyatso)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한 이후, 지금은 중국에 철저히 복속되어 있는 곳. 그 땅으로 향했다. 5개국 환경예술가, 행위예술가 등이 함께하는 ‘나인 드레곤 헤즈(Nine Dragon Heads)’ 행사에 옵서버로 따라나선 것이다.

비행기가 내려앉은 라싸(Lhasa)의 해발고도는 3650m. 잠시 머리가 어질하다. 다음 날 먼저 찾은 곳은 조캉사원이다. 많은 티베트인이 사원에 참배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사원 주위로는 수많은 사람이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마니차를 돌리면서 입 속으로 중얼중얼 끊임없이 만트라를 암송하고, 삼보일배로 이마까지 땅에 대며 오체투지를 한다.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삼보일배로 고향을 출발해 이 조캉사원까지 오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오체투지를 하고 일어서는 사람마다 이마에는 둥그렇게 흙이 묻어 있거나 아예 혹이 생겨났다. 무엇이 이들 티베트인들로 하여금 이런 고행 속에 자기 신앙을 지키게 하는 것일까?

2 조캉사원. 3 삼보일배하며 사원 참배길에 나선 티베트인.

그런 티베트인들 사이에 총을 든 푸른 제복 사나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혹시라도 티베트인들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라도 일어날까 봐 감시하는 무장군인들이다. 2008년에도 티베트인 시위가 철저하게 진압된 적이 있었고, 근래 들어와 신장, 내몽고 등에서 소요가 일어났기에 중국 당국으로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가이드도 군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조캉사원 앞 광장에는 ‘西藏和平 解放 六十周年’을 기념하는 꽃탑이 서있다. 지난 7월에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면서, 아예 외국인의 티베트 출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과연 티베트인들은 이 60주년을 순수하게 화평과 해방의 해로 받아들일까?

붐비는 시간을 피해 사원 안에 들어가 보았다. 안에는 7세기에 당나라 문성공주가 송첸캄포(松贊干布) 왕에게 시집 오면서 가지고 왔다는 석가모니 불상 외에 많은 부처와 달라이 라마상을 모셔놓았다.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실내에 이렇게 많은 조각상을 모셔놓으니 이방인인 나로서는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상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은 경건하기만 하다.

라싸 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곳은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며 업무를 보던 포탈라궁일 것이다. 마부르산 위에 우뚝 솟은 높이 110m의 포탈라궁의 모습은 장엄하기만 하다. 특히 포탈라궁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靈塔)이 있다. 달라이 라마 5세의 영탑의 경우 황금 5500㎏과 보석, 옥돌 1만8680개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 진귀한 황금과 보물을 영탑을 치장하는 데 쓰지 않고, 티베트 인민을 위해 썼더라면 하는 생각은 단지 이방인의 편견일까?

포탈라궁 제일 꼭대기 중앙에는 오성기가 펄럭이고 있다. 저기에 거주하던 달라이 라마는 망명하여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 궁의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오성기는 오늘의 티베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포탈라궁이 모든 티베트인의 마음의 중심이라 하기에 이곳의 보안과 검열은 다른 어느 곳보다 철저하다. 공항처럼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나야 하고, 관광시간도 한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가이드는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 가이드 면허가 취소된다며 시간을 지켜달라고 다시 신신당부한다. 나중에 스위스 예술가 한 분이 늦게 나오니 가이드의 안색이 달라지는 것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라싸를 떠나 시가체(Xigaze)로 간다. 시가체에는 타쉬룸포 사원이 있다. 포탈라궁이 달라이 라마의 상징이라면, 타쉬룸포 사원은 라마교 제2의 지도자인 판첸 라마의 상징이라 하겠다. 타쉬룸포 사원 뒤의 헐벗은 니세리산은 타르초와 룽다로 길게 덮여 있다. 티베트의 어디를 가나 타르초와 룽다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여기처럼 산 꼭대기뿐만 아니라 아예 산 전체를 덮은 곳은 없을 것 같다. 타쉬룸포 사원은 단순히 사원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의 거주 공간까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전성기 때에는 승려가 수천 명이었다는데, 지금은 관리하는 승려들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는 판첸라마의 영탑들이 모셔지고 있는데, 5세부터 9세까지의 영탑은 합장탑이다. 원래 각각으로 모셔지던 것이 문화혁명 때 파괴됐다. 문화혁명의 광기는 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서 오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지만, 11대 판첸 라마인 갼차인 노르부(Gyancain Norbu)는 현재 중국에 있다.

이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마을 팅그리로 간다. 팅그리에서 에베레스트로 가기 위해서는 비포장의 험한 길을, 그것도 중간에 5200m의 고개를 넘어 5시간 넘게 허위허위 달려가야 한다. 5200m의 베이스캠프에서는 강한 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작가들은 각자 준비해온 자기 작품의 상징물을 타임캡슐에 넣고 히말라야 품에 묻는다. 그리고 이병욱 교수의 기타 연주에 맞추어 임솔내 시인이 ‘룽다’라는 시를 낭송한다. 덴마크 작가 헨릭(Henrik)은 준비해온 미니 골대와 공을 꺼내 현지 티베트인들과 미니 축구 퍼포먼스를 펼친다. 축구를 통한 현지 티베트인들과의 교감, 예술의 놀이화 등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팅그리로 돌아오니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들과 음악을 통한 교감의 장을 만들기 위해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병욱 교수가 기타를 연주하며 아리랑과 직접 작곡한 ‘금강산’을 노래하고, 이에 화답하여 전통 민속의상을 입은 팅그리 민속음악대원들이 기타 비슷한 민속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그들의 춤과 노래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발을 구르고 몸을 돌리고 손을 하늘로 뻗치고… 우리 또한 음악에 어깨를 들썩이면서 하나 둘 앞으로 나서 그들과 어울려 몸을 돌렸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대신 음악과 춤과 눈빛이 통한 밤이었다.

이런 음악의 교감이 펼쳐지는 동안 미국 작가 가브리엘(Gabriel)은 퍼포먼스 도구인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꺼내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팅그리의 아이들이 몰려와 신기한 듯 구경을 하며 만드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서로 나선다. 가브리엘은 다 만든 아이스크림을 구경하던 주민들에게 조금씩 나눠준다. 아, 가브리엘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아이스크림을 같이 만들고 나누며 현지 주민들과 마음을 나누는 이 훈훈한 장면!

불은 서서히 꺼져가고 모여든 사람들도 하나 둘 흩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잠자고 지나가는 곳으로만 생각하였던 팅그리가 이렇게 이곳 주민들과 하나의 감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이제 우리는 다시 행장을 꾸려 이 세계의 지붕에서 내려가려 한다.
이 고원이 저 밑 세상과 연결되는 길고 깊기만 한 장무 협곡을 통하여….


양승국 변호사는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일하고 있다. 산을 좋아해 『양승국 변호사의 산이야기』를 출간했다.

티벳 글·사진 양승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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