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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 더 부지런한 현대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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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30면

“휴가 다녀오셨어요?” 여름 내내 안부인사처럼 주고받던 말이다. 휴가를 ‘갖다’ ‘보내다’라는 표현 대신, 휴가를 ‘가다’ ‘다녀오다’ 같은, 엄밀히 따져 문법적으로 불완전한 어법이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언젠가부터 휴가는 어딘가를 다녀오는, 길고 짧은 여행의 의미를 뜻하게 됐다. 한가히 머무르며 쉬기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휴식 아닌 휴식을 우리는 더욱 지향하고 추구한다. 그렇게 치열한 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할 시점, 휴가 후유증에 대한 지침까지 숙지한다면 현대 휴가 문화의 매뉴얼은 완벽히 수행되는 셈이다.

들리는 얘기로, 요즘 아이들에게는 모든 휴가 일정을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것이 아빠의 임무이자 능력이라고 한다. 방학 중 어디를 다녀오는가에 따라 아빠의 능력이 확인되며 그것을 비교하는 은근한 경쟁이 아이들 사이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런 탓인가. 최근 어느 설문조사에선 직장인 10명 중 6명이 휴가 스트레스를 경험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제한된 시간과 비용으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압박을 받고, 정작 휴가를 떠나서는 북적대는 여행지에서 행락 인파와 교통체증에 시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사회를 표현하는 수식어 중 하나는 ‘체험사회’다. 소비주의가 확대됨에 따라 시·공간을 뛰어넘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확인하고자 하는 체험의 욕구가 증가한다. 이런 욕구들은 이동성의 증대와 맞물려 있다. 체험사회에서 개인의 이동성은 일종의 자원이며 능력이다. 그 능력은 이동 가능한 거리에 비례한다.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오랫동안 멀리 떠날 수 있는 이들이 휴가철의 최고 능력자로 평가받는다.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는 인류의 역사를 정착이 아닌 이동, 즉 ‘노마디즘’으로 서술한다. 그에 따르면, 이동하는 노마드(nomad)의 삶 속에서 창의적 정신이 고양됐고, 인류 대부분의 발명품이 탄생했다. 늘 새로운 환경과 고난에 맞서 싸우며 삶을 개척해야 했던 유목민의 삶은 언제나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최근 모바일 기술의 발전, 이동성의 증대, 가처분 시간의 확대 등으로 다시 노마디즘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선택적인 이동의 성격으로 인해, 이동성의 역량은 사회 계층을 재분류하는 변수가 됐다. 거기에서 새롭게 떠오른 자발적이고 유희적인 노마드 집단은 사회를 이끌고 바꿔 나갈 ‘창조 계급’으로 주목받기까지 한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무엇에서도 안주하기 힘들다. 직장도 집도 옮겨다니기 바쁘다. ‘몇십 년 근속’ 같은 것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같은 동네, 같은 집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는 모습도 재테크에 실패한 것쯤으로 취급될 수 있다. 여가시간 역시 소문난 맛집을 찾아, 다양한 세상을 구경하러, 누군가를 만나러,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느라 쉴 틈이 없다. 움직임은 곧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한 방편이자 체험과 배움과 다양한 문화자본 축적의 기회라고 여겨진다. 반면 가만히 정주하는 건 무익하거나 무능한 것쯤으로 인식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꼼짝없이 집에서 여름을 다 보낸 나는, 지난주 마지막 휴가철까지 다 보내고 난 후, “휴가 다녀오셨어요?”라는 숱한 물음에 괜스레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일도 좀 많았고, 한창 붐빌 때 어딜 가기도 그래서… 차라리 가을쯤에나 다녀올까 하고요. 하하.”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비인간적 노동 체제를 고발하고자 했던 폴 라파르그는 길고 긴 노동으로부터 휴식과 안식을 찾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다. 그에 비해 충분한 휴식의 시간 속에서도 게으를 수 없는 우리는, 이제 그 권리를 ‘이동할 수 있는 권리’에 넘겨주고 있다.



궁선영 고려대에서 소비문화에 대한 연구로 2009년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고려대·동국대 등에서 문화사회학과 지역문화 등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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