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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이슬람 = 빈 라덴’일까요, 그건 아주 짧은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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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방의 이슬람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선 문명의 충돌이 아닌 ‘다름’의 시각에서 세계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가운데 두 눈만 드러낸 무슬림 여성.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이토록 협소했던 것은 아닌지 … . [중앙포토]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뿌리와이파리
608쪽, 2만8000원

지난 7월 노르웨이 테러를 감행한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32)은 기독교 광신주의자가 아니다. 민간인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이다. 오히려 비디오게임이나 보디빌딩 등에 관심이 있는 깔끔한 노르웨이 청년이다.

 5월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도 이슬람 광신주의자가 아니었다. 재벌의 아들로 1980년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후원한 아프가니스탄 내 대(對)소련 투쟁에서 보급을 담당했다. 이슬람 학자도, 설교자도 아니었다. 9·11 공격 등 대서방 공격을 주모한 테러범이었다.

 브레이빅과 빈 라덴 모두 각각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에서 지탄을 받는 ‘변종’일 뿐이다. 두 사람이 양 문명의 적대적 감정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이 책을 쓴 타밈 안사리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현대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갈등을 ‘문명의 충돌’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보다 서로 맞지 않는 두 줄기의 세계사가 교차하며 발생하는 마찰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9·11의 가해자들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공격을 감행한 것일까. 일부 기독교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오늘날 과격 이슬람 세력을 움직이는 원동력일까. 지은이는 이슬람의 담론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이보다 도덕적인 청렴과 타락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지적한다. 서구문화의 침투로 이슬람의 가치가 침식되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빈부의 간극이 커져가는 현상을 되돌리거나 늦추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시사점은 분명하다. 갈등과 적개심보다 ‘다름’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각이다. 원서 제목 ‘Destiny Disrupted(엇갈린 운명)’에서 나타나듯 양 문명의 진행방향에 차별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이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인 것처럼, 기독교인도 다른 어딘가로 향하는 한 무리”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1400여 년 이슬람과 그 주변의 역사라는 묵중한 주제를 흥미진진한 ‘인생극’ 형식으로 펼쳐낸다. 사료에 대한 꼼꼼한 조사가 눈에 띈다. 게다가 인용된 일화도 경박하지 않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었을 때 이슬람 정복사업을 주도한 황소 같은 사내 우마르가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십자군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을 때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무더위에 녹초가 된 ‘사자왕’ 리처드 1세에게 과일과 얼음을 보냈다는 대목 등이다.

 두 번째 강점은 신뢰성이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고 그 인근 지역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대대로 이슬람에 대한 학식과 신앙심으로 존경 받는 집안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아프간 남자와 결혼해 그곳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었다. 안사리는 64년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뒤로 45년 동안 미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아프간의 친척·친구들과 소통하면서 9·11 테러의 양편을 드나들고 있다.

 그동안 무슬림 학자들이 쓴 이슬람 세계사, 서방 학자들의 이슬람 역사서가 다수 출판됐다. 하지만 양측은 자신의 시각을 주로 주장하고, 상대의 의견을 배척해 왔다. 때문에 이 책은 양편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서방의 이슬람공포증을 치료하는 해독제가 될 수 있고, 아집과 고집에 빠진 무슬림들에게 자기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을 망라한 매혹적인 드라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와 초기 칼리프들의 일생에서 출발해, 그 뒤로 펼쳐진 광대한 이슬람 제국들의 시대를 거쳐, 최근 몇 세기 이슬람을 황폐하게 만든 이념운동과 9·11 공격에 이르게 한 복잡한 갈등까지 이슬람 세계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흡입력 있게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과 서구를 갈라놓은 여러 단절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자살폭탄테러와 최근 중동 민주화 과정을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는 데, 그리고 유럽과 북미를 뒤덮고 있는 이슬람공포증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다.

서정민 교수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빈 라덴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3대 논쟁

① 이슬람과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보다 확고히 정립된 서구의 대(對)이슬람 시각을 대표한다. 이에 대해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시각은 서구가 구축한 ‘오리엔탈리즘’ 판타지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최근 중동에 일고 있는 민주화 시민혁명의 움직임으로 인해 이 논쟁에서 충돌론이 점차 힘을 읽고 있다.

② 이슬람은 폭력의 종교다?

버나드 루이스와 같은 서구의 저명한 중동학자들은 이슬람이 ‘본질적으로’ 정치과정에 폭력성을 동반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이슬람권 및 적지 않은 서구의 학자들은 테러는 각 시기의 정치적 혹은 대외적 환경 하에서 등장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13세기 초 몽골에 의해 이슬람 제국이 붕괴했을 당시와 18세기 말부터 서구의 제국주의가 이슬람권을 침탈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무장투쟁이 고조되었다는 주장이다.

③ 이슬람이 중동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다?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보고 1년 한 달을 단식하는 이슬람권에서는 경쟁력을 가진 경제가 등장하기 어렵다는 서구의 시각이다. 더불어 1400여 년 전에 정립된 경제관이 21세기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중동학자들은 이슬람 종교가 초기에 사유재산권을 보장할 정도로 경제활동을 장려하는 종교라고 반박한다. 현재의 미(未)발전은 석유에 의존한 국가주도형 경제구조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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