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패배 … 투표율 25.7%,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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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주민투표를 마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투표율 33.3%에 미달해 오 시장이 9월 30일까지 사퇴할 경우 10월 26일, 그 이후에 사퇴하면 내년 4·11 총선과 함께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연합뉴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33.3%에 미달해 개표가 무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4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투표권자 838만7278명 중 215만7772명이 투표에 참여, 25.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전면 무상급식’(야당안)과 ‘단계적 무상급식’(서울시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번 투표에선 야권이 투표 불참운동을 벌임에 따라 투표율이 개표 요건인 33.3%를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투표함을 열지 못할 경우 서울시장직을 내놓겠다고 약속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초등학생·중학생 무상 급식은 곽노현 안대로 전면 실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오 시장은 투표가 끝난 오후 8시30분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어려운 환경에서 투표에 당당하게 참여한 서울시민 유권자께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은 오 시장 거취와 관련, “당과 상의해서 하루 이틀 내에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오 시장의 실패, 보수의 패배를 의미한다. 오 시장은 지난 21일 투표율에 시장직을 걸면서 무상급식 문제에 대한 정책 투표를 자신에 대한 신임 투표로 성격을 바꿨다. 이에 한나라당과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도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몽골 방문에 앞서 녹음한 인터넷·라디오 연설을 통해 ‘포퓰리즘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오 시장을 측면 지원했다. 여권과 보수 진영 전체가 주민투표에 매달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오 시장의 승부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서울시 25개 구(區) 중 투표율이 33.3%를 넘은 곳은 강남구(35.4%)와 서초구(36.2%)뿐이었다. 보수층이 결집하다시피 했는 데도 투표율이 낮게 나온 만큼 보수는 이념 대결의 양상을 띤 이번 주민투표에서 완패한 셈이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복지에 관한 국민의 요구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상황인데도 보수 진영은 시대적 요구를 읽지 못한 채 이념적인 틀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투표였다”며 “투표 결과는 보수의 패배로, 보수가 정치적 주도권을 진보에 빼앗긴 게 아니라 주도권을 ‘가져가세요’라며 넘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 교수는 “정책적으로는 한나라당의 반(反)포퓰리즘 논리가 야권의 보편적 무상급식론을 무찌르는 데 실패했으며, 정치적으로는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건 이유를 중도층에 설명하지 못해 패배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물러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가 9월 30일 이전에 물러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은 10월 26일이 된다. 10월에 물러나면 서울시장 보선은 내년 4월 총선과 함께 실시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10월 보선을 기피하고 있다. 오 시장도 당 측에 “10월 8일까지는 사퇴 안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권은 “당장 사퇴하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오 시장이 빨리 물러나는 게 좋다는 목소리가 나오면 오 시장의 사퇴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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