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소르비노 -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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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영화 제목치곤 좀 우습긴 하지만(난 신사가 아니기 때문에 금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소개할 배우를 설명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기'에 썼을 뿐이다. 어쨌든 그녀는 금발이며 백치미와 섹시함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연기자이고 게다가 머리까지 좋다.

헐리웃 역사상 가장 많은 미스테리와 염문을 뿌린 배우는 누가 뭐래도 '마릴린 먼로'일 것이다.(분명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케네디'와 함께 60년대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이자 헐리웃 스타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렇다고 오해 마시라. 오늘 소개할 스타가 '케네디'나 '마릴린 먼로'는 아니니까.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영화(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케이블TV 채널인 HBO에서 제작한 TV영화) 〈노마 진 앤 마릴린〉은 두 명의 헐리웃 스타가 나란히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미라 소르비노'와 '애슐리 쥬드'가 바로 그 주인공들. 특히, '마릴린 먼로' 역을 멋지게 소화해낸 '미라 소르비노' 의 연기는 기막힐 정도인데 왜 '미라 소르비노'가 '마릴린 먼로'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노마 진 앤 마릴린〉을 보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촬영 현장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미라 소르비노'는 극중 '마릴린 먼로'가 불렀던 노래들과 그녀 특유의 걸음걸이, 발성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또 다른 주역 '애슐리 쥬드'의 연기도 빼어나다. 고백하건데 나는 '미라 소르비노'와 함께 출연한 '애슐리 쥬드'도 무척 좋아한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 발 킬머와 함께 공연했던 〈히트〉에서 애절한(?) 눈빛은 아직도 쉽게 잊을 수 없다)

'미라 소르비노'는 올해 33살이 되었다. 그리 젊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멋진 금발의 섹시함과 어딘가 좀 모자란 듯한 백치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 독특한 이미지의 '스타'다. 1967년 9월28일 미국 뉴욕 태생이며 '조디 포스터'와 더불어 엘리트 출신 배우에 속한다.(그녀는 하버드 대학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대학 졸업후 연기자를 꿈꿨지만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로버트 드니로'의 필름 프로덕션에서 연출부 보조일과 잡다한 일로 영화계의 첫 발을 내디뎠고 친구인 '로브 웨이스'의 인디영화 〈Amongst Friends〉를 통해 비로소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94년 〈바르셀로나〉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쇼〉에서 단역으로 출연, 세상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뭐니뭐니해도 배우 '미라 소르비노'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린 작품은 '우디 알렌' 감독의 〈마이티 아프로디테〉일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멋진(!) 금발머리를 지닌, 순수하지만 약간 어리숙한 매춘부 '린다' 역을 맡았다. 사실, 처음에 그녀는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오디션에 통과하지 못했었다. 캐스팅 디렉터가 린다 역을 맡기엔 그녀가 너무 지적이며 우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녀의 미미한 경력과 외모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우디 알렌'은 그녀를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택이 탁월했음을 어렵지 않게 증명했다. 노력의 대가도 생각만큼이나 달콤했다. 1995년 오스카 최우수 여우조연상수상, 골든 그로브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휩쓴 것이다.(그러고 보면 〈마이티 아프로디테〉는 '우디 앨런'의 영화라기보다는 '미라 소비노'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이후부터는 아찔한 정도의 탄탄대로. 〈Blue in the Face〉, 〈Tarantella〉, 〈Sweet Nothing〉에 출연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노마 진 앤 마릴린〉으로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로미와 미첼의 고등학교 동창회〉, 드림서치가 제작하고 '진원석'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죽기도 피곤해〉를 비롯해 〈미믹〉과 '주윤발'의 할리우드 데뷔작〈리플레이스먼트 킬러〉를 거쳐 〈다리 위의 룰루〉,〈사랑이 머무는 풍경〉,〈썸머 오브 샘〉을 통해 연기의 폭을 넓혔다.

이제 '미라 소르비노'는 독립영화와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오가며 90년대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어릴적 쉽게 뜨고 쉽게 지는 배우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그녀의 아버지 '폴 소르비노' 역시 배우 출신으로 〈좋은 친구들〉과 〈닉슨〉에 출연했던 명배우이자 성격파 배우로 유명하다)의 뒤를 이어 최고의 자리에 섰다. 현재 그녀의 책상위에는 〈위대한 개츠비〉와 '로날드 맥스웰'이 연출하는 또 한편의 잔다르크 영화 〈잔다르크:처녀 전사〉의 시나리오가 나란히 놓여있다. 그리고 조만간 또다른 모습의 '배우' '미라 소르비노'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연기자 '미라 소르비노'를.

※ 필자 조은성씨는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의 조감독을 거쳐 EBS 교육방송 〈시네마 천국〉구성작가, 나우누리 영화동호회 시삽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인터넷 업체(아이팝콘)에서 영화컨텐츠팀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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