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시골마을 ‘무인 가게’ 20여 일째 순항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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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충남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마을 앞 버스승강장에 설치된 무인판매대 앞에서 고객들이 진열된 농산물을 손에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8일 오전 10시 충남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서천군 지역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봉선지(鳳仙池)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지방도 613)의 버스장류장 옆에는 노점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노점에는 ‘벽오리 친환경농산물 판매장’이라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하지만 판매장을 지키는 사람은 없다. 마을 주민들이 무인(無人)시스템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판매장에 진열된 풋고추, 감자 등 농산물을 골라 집어 든다. 물건 값은 노점 한쪽에 비치된 ‘돈 상자’에 넣는다. 이곳을 찾은 고안옥(50·서천군 서천읍)는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신선한 야채와 채소를 사기 위해 소문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곳 농산물 무인 판매장은 1일부터 운영 중이다. 이 마을 박대수(39)이장의 제안으로 설치됐다. 박씨는 주민들에게 “무인판매장 운영으로 일손도 절약하고 물건을 팔러 차를 타고 5일장을 가는 번거로움을 해소해 보자”고 건의했다. 23가구 40여 명이 거주하는 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주민들은 벼농사와 밭농사 등을 두루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주민들은 인도 위에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천막을 치고 그 안에 상품 진열대(높이 1m)를 설치했다.

 진열대 앞 화이트보드에는 날마다 농산물을 파는 주민들의 이름과 상품 내역을 적는다. 또 이곳을 다녀간 고객이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 넣도록 빈칸으로 남겨놓았다. 돈 상자는 진열대와 단단히 연결해 쉽게 떼낼 수 없게 만들었다. 주민들은 판매할 농산물은 매일 오전 7시 30분에 갖고 온다. 농산물은 비닐봉지에 넣어 가격표를 부착해 진열한다. 그런 다음 각자 흩어져 볼일을 본다. 오후 7시 30분 다시 나와 안 팔린 상품은 다시 주인이 가져가고 팔린 물건은 돈을 챙겨 귀가한다.

 이곳에 진열되는 농산물은 모두 마을 주민들이 텃밭에서 재배한 것이다. 감자, 고추, 양파, 가지, 깻잎, 옥수수 등이 단골 메뉴다. 가끔 계란과 들깨기름도 등장한다. 이장 박씨는 “대부분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기른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8만원 어치의 농산물이 팔린다. 고객은 대부분 이웃 마을 주민이다. 가끔 마을을 찾는 관광객 등 외지인도 이용한다. 20일 넘게 운영되고 있지만 진열대에 있던 농산물 절도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주민 김영희(57·여)씨는 “날마다 돈 상자에 든 돈 액수와 판매된 농산물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강영주(57) 마산면장은 “주민들이 직거래로 제값을 받을 수 있고 마을의 농산물을 홍보하는 효과를 거둔다”고 말했다.

글=김방현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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