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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누구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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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2000년께 정보기술(IT) 붐이 한창일 때였다. 일본에서 갓 상장한 IT기업의 기업설명회에 가봤다. 주최 측은 참석자들을 소속에 따라 분류해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런데 한 귀퉁이 테이블엔 ‘초등학교 4학년생’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앉는 사람도 없었다. 초등학생이 올 자리가 아닌데, 하며 참석자들은 궁금해 했다. 그러자 행사 직전 안내원이 팻말을 바꿔 붙였다. 새 팻말엔 ‘은행 관계자’로 적혀 있었다. 지정석을 찾지 못하던 은행원들이 그제야 계면쩍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최 측이 기획한 작은 퍼포먼스였다. 기술이나 잠재력보다 담보와 실적을 중시하는 은행을 야유한 것이다. 당시 일본 IT업계에선 이 얘기가 짜하게 퍼져 은행원들 심기가 한동안 불편했다고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가계대출 억제한답시고 예고 없이 대출을 중단했다 욕 얻어먹은 우리 은행들도 똑같다. 금융사는 돈(金)을 빌려주는(融) 게 본업이다. 혹시라도 잘못될 위험을 어디에 어떻게 분산시키느냐, 즉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짜느냐가 중요한 업이다. 여기에서 잘난 은행과 못난 은행의 차이가 난다.

 우리 은행들은 어떤가. 그동안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에 나섰다. 자산 늘리겠다며, 쉽게 수익 난다며, 담보 있으니 괜찮다며 말이다. 여러 차례 경고등이 켜졌지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은행 내부나 계열 연구소도 경고했지만 영업 현장에선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감독당국의 뒤늦은 지시에 마치 항의라도 하듯 대출을 중단한 거다. ‘배 째라’ 하며 자빠진 거나 뭐가 다른가. 은행의 공공성을 완전히 무시한 행동이다. 못난 은행이 이젠 나쁜 은행으로 돌변한 것이다.

 은행은 정부 면허로 편하게 장사하다가도 어려워지면 공적자금이나 정부보증에 기대곤 한다. 이익 나면 자기들끼리 나눠 갖고, 망할 것 같으면 국민들에게 십시일반으로 손 벌린다.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다. 그런 은행이 이젠 책임도 사회화하려 하고 있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건 공급자인 은행이나, 수요자인 가계나 마찬가지다. 가계부채 문제를 거론할 땐 흔히 은행이나 감독당국 탓을 많이 하곤 한다. 빌려 쓴 가계의 책임이나 절도에 대해선 냉정하게 지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소득은 제자리고, 인구는 고령화하고, 주택비·교육비는 많이 든다며 불가피한 상황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또 소득격차가 심해지면서 부지불식간에 ‘서민 채무자=피해자’라는 시각도 퍼져 있는 듯하다.

 여건이 그럴 만했다. 돈은 많이 풀리고, 금리는 바닥이고, 주가는 어지간히 오르고, 좀 기다리면 집값도 오를 것 같고, 은행은 대출을 권하고…. 한마디로 빚 권하는 사회였다. 그래서인지 빚을 만만히 보는 사람이 적잖다. 돈은 언제나 빌릴 수 있다, 빚은 늘 지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빚을 얻어 과다 투자하는 기업과 다를 게 없다. 정부는 대기업의 차입경영에 대해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그런 가계 빚에는 제때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가계대출 826조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채무자 중에는 정말 어려워서 빚을 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출 받아 땅 사고 주식 투자한 사람도 있다. 이를 두고 획일적인 총량규제로 틀어막는 건 너무나 거친 방법이다. 게다가 이미 대출 중단 소동이 벌어진 이상, 기존 대출자들은 만기가 닥쳐도 연장을 요청할 것이다. 한번 갚으면 다시 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이익은 신규 수요자들이 뒤집어 쓸 판이다. 은행들의 무책임한 행동, 감독당국의 안이한 태도, 대출자들의 해이한 의식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금융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단단히 뒤틀린 탓이기도 하다. 가계부채에 관한 한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할 수 있겠나.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