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가상국가 적발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해놓고 여권, 대학학위, 운전면허증 등을 수천달러의 고가에 팔아온 가상 국가가 적발됐다. 스페인 경찰은 인터넷에 `씨랜드(Sealand)''라는 명칭의 정부 웹사이트를 개설해놓고 스스로를 통치자라고 주장한 프란시스코 트루히요(46) 등 2명을 체포했다고 11일 밝혔다.

트루히요는 웹사이트를 통해 씨랜드가 영국 북해 하리치항 근해에서 10㎞ 떨어진 작은 공국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중이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국민이 16만명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트루히요는 이 사이트를 개설한 뒤 외교관 여권, 대학학위, 운전면허증 등 각종신분증과 서류를 건당 평균 6천달러에 팔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위조된 여권 등은 슬로베니아에서 홍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팔려나갔으며 특히 홍콩에서는 씨랜드 여권 4천여개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지난 97년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를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앤드루 쿠나난도 씨랜드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스페인 경찰은 트루히요 등을 일단 보석으로 풀어줬으나 수사 진행상황에 따라각국 출신 60여명을 기소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독일, 프랑스, 미국,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출신으로 각국 정부 각료나 외교관으로 행세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씨랜드라는 장소는 2차대전중 영국 근해에 실제 존재하긴 했으나 땅이나 섬이라고 볼 수 없는 소규모 군사시설로 독일군의 공습에 대비해 설치한 대공포 설치대에 불과했었다. 씨랜드는 영국군 장교출신이었던 패디 로이 베이츠가 지난 67년 점거한 채 독립을 선포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으나 베이츠 후손들은 트루히요의 가상국가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트루히요는 씨랜드가 조만간 해상 첨단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며 세계금융시장을 상대로 투자자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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