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지난 ‘반값’ 쿠폰 미국선 받고, 한국선 안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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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회사원 최상진(44)씨는 석 달 전 한 소셜커머스(social commerce·공동구매로 싼값에 상품을 구입) 사이트에서 식사 쿠폰을 구입했다. 원래 7만5900원짜리 스테이크 세트를 3만2000원에 먹을 수 있는 쿠폰이었다. 이후 바쁜 업무 때문에 가족 모임 날짜를 잡지 못하다 최근 쿠폰의 유효기간이 하루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쿠폰을 발행한 외식업체에 부랴부랴 전화를 했지만 “유효기간이 지났으면 쓸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소셜커머스 사용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쿠폰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사용도 환불도 불가능해 논란이다. 미국 등에선 유효기간이 지나면 할인은 못 받지만 쿠폰 액면가만큼은 쓸 수 있게 돼 있다. 특히 미국에 본사를 둔 소셜커머스 업체 그루폰코리아는 미국에선 쿠폰 유효기간이 지나도 액면가는 인정하면서 한국에선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과 달리 한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는 이유는 국내에 소셜커머스와 관련한 ‘표준약관’이나 규제의 근거가 될 ‘상품권법’ 등이 없기 때문이다. 상품권법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기업에 부담이 된다며 사라졌다. 당시 상품권법은 ‘유효기간이 경과됐으나 소멸시효(5년)가 완성되지 않은 상품권을 제시하는 자에게는 일정한 현금·물품·용역을 상환 또는 제공한다’고 돼 있어 소비자 보호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미국은 ‘신용카드 책임 및 공시에 관한 법안(Credit Card Accountability, Responsibility and Disclosure Act)’이 이런 근거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상품권법이 폐지돼 소셜커머스 쿠폰을 마땅히 규제할 근거가 없다”며 “현재 개정 중인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소셜커머스’ 부분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효기간을 넘긴 쿠폰 금액은 소셜커머스 업체와 거래 업체의 ‘공짜 수익’으로 돌아간다. 소셜커머스 업체와 계약한 한 중식당 사장은 “일반적으로 쿠폰 구매자의 10~15%는 유효기간 내 쿠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만원짜리 쿠폰 1000장을 발행하면 100명 이상이 유효기간을 넘겨 업체가 300만원을 그냥 챙기는 셈이다. 올 상반기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소셜커머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172건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신필순 수석위원은 “공정위에서 소셜커머스 관련 표준약관을 만들거나 유권해석을 한 전례가 없다”며 “관련 법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소셜커머스(social commerce)=일정 수 이상의 구매자가 모일 경우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 상품을 제공한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구매자를 모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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