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마켓뷰] 기업의 힘 탄탄 … 긍정의 끈 놓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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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경기는 더블딥(이중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L’ 형태의 느린 복원이 시장의 컨센서스이고, 부채의 위협은 개인에서 정부를 거쳐 이젠 다시 금융회사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욱이 이를 타개할 만한 정책적 묘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직 금융위기 이후 찾아왔던 상승장의 종언을 속단할 시점은 아니지만 상황이 점점 더 악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 증시는 점점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금융위기의 트라우마로 인한 시장 참가자의 심리적 위축도 상황을 더 악화시킨 주범이다. 유로존 금융회사의 주가 급락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급등에서 시장 참가자는 2008년 3월 베어스턴스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주가가 먼저 추락했고, 사실과 다른 소문과 의혹이 뱅크런으로 연결되고, 결국 월가의 역사에서 베어스턴스가 사라져 버렸던 기억 말이다. 신뢰의 붕괴가 몰고 올 파국을 이미 시장 참가자는 주가에 반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시장을 떠나진 말자. 인간의 공포가 만들어내는 추락은 비단 오늘만의 현상이 아니었고, 공포는 항상 주식 비중 확대의 기회였다. 이는 오랜 증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더욱이 주가는 이미 세계 경제가 경기침체에 재진입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일정 부분 반영해 왔다. 이후 주가 변동성 팽창 국면에서의 단기 매수(Trading Buy)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주는 추락보다 반등을 예상한다. 지난주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으로 대표되는 주도주의 급락 과정에서 일단 매도 절정기(Selling Climax)가 출현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길게 보면 비정상적인 주가 조정이 의미하는 위험신호를 존중하고 길에서 비켜서야 하겠지만, 강력한 움직임 뒤에 따르는 복원 과정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투자의 세계에서 위험과 기대수익률은 비례하며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금융위기가 준 교훈 또한 잊지 말자. 100년 만의 위기라 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벗어난 이유는 바로 기업의 힘이었다. 현 상황도 유사하다. 금융위기는 가계, 재정위기는 정부의 위기였지만 아직 기업의 위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 당장은 예기치 않은 주가 급락이 사실보다 과장된 소문과 의혹으로 확산하고 기업 이익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변한 건 없다. 파국을 속단하지 말고 이후 코스피 시장의 방향성은 지금이 아닌 10월 이후 기업의 실적 추이에서 판단해야 한다. 3분기 실적의 뚜껑을 열어 보면 상황은 우려만큼 악화하지 않았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경제성장의 축은 이미 미국과 EU에서 신흥국으로 넘어가고 있고, 금융위기 이후 우리 기업의 약진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한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긍정의 끈을 놓지 말자. 경제·정치적 복합적 갈등 구조하에서 정책 조합의 선택 애로로 인해 시장불안이 고조된 부분이 있고, 경기와 실적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적 갈등구조가 완화되는 징후가 출현하고 무엇보다 낮아진 기대수준에 비해 경기와 실적이 좋아지면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는 힘이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을 일정 부분 잠재워 줄 가능성도 크다. 그 징후도 이미 출현해 있다. 가계와 정부는 부채에 허덕이고 있지만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은 활발해지고 있다. 돈은 기업에 가 있고 이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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