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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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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3년 전 이맘때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1939년 8월 9일~2008년 7월 31일)의 작품 중 ‘소문의 벽’이라는 중편이 있다. 유명한 ‘전짓불의 공포’라는 얘기가 나오는 작품이다. 전짓불의 공포란 강력한 전등 불빛 때문에 신문자(訊問者)의 정체를 알 수 없는데도 내면의 진실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이의 끔찍한 공포를 표현한 말이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인지 국방군인지 알 수 없는 한밤의 침입자로부터 어느 편이냐고 추궁 당했던 소설의 주인공 박준은 그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미쳐버린다. 소설가가 된 박준을 괴롭힌 ‘전짓불’은 표면적으로는 냉담한 독자들의 시선이나 문예지 편집자 같은 오만한 문학권력자들이었다. 하지만 소설이 1971년에 발표된 점을 감안하면 정작 이청준이 염두에 두었던 전짓불은 말과 글의 자유를 억압하는 당시 권위주의적인 국가권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작가들이 상대해야 하는 전짓불은 이청준이 싸웠던 전짓불보다 한층 강력한 것 같다. 잠재적인 소설 독자들의 관심을 온통 사로잡는 영화나 TV 예능, 인터넷 미디어 등과 대적해야 한다.

 수세에 몰려 전짓불과 싸울 때 작가들은 자신만의 방을 찾아 든다. 최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고 싶은 한국 작가를 묻는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여론조사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소설가 신경숙과 김훈은 ‘방’에 관한 한 스타일이 정반대다. 신씨는 자신의 집 서재를 고집하고 김씨는 집을 나선다.

 구로공단에서 여공으로 일한 이력을 밝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씨의 장편 『외딴방』에는 특유의 글쓰기 스타일이 잘 나와 있다. 그는 약속장소로 나가다가도 마음에 드는 문장이 떠오르면 발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순간의 영감을 놓치지 않고 글로 붙들어 놓기 위해서다. 심지어 신씨는 ‘글쓰기는 나에게 집이었을까. 내 속을 뚫고 올라오는 문장들은,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쓴다.

 반면 김씨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집을 뛰쳐나간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기 위해 김씨가 오히려 외딴 방을 찾는 격이다. 베스트 셀러 『칼의 노래』를 그는 전남 남평의 영산강 지류인 드들강 옆 농가 주택에서 썼다. 연필과 지우개로 소설을 쓰는 그는 비가 많이 와 강물이 범람하자 급한 대로 원고뭉치만 들고 뛴 적도 있다.

 김씨는 요즘 경기도 선감도의 한 작업실에서 새 작품을 쓰고 있다. 황사영, 정약전·약용 형제 등 19세기 지식인들이 등장하는 역사소설이다. 지난주 김씨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근황이 궁금했다. 홀로 소설 쓰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그는 야위어 있었다. 서너 달 동안 5㎏이 빠졌다고 했다. 오른손 검지 손톱은 수도 없이 물어뜯어 형태가 일그러져 있었다. 작가들에게 전짓불의 공포는 여전히 강력한 것이다.

 문학과지성사는 이청준 전집 개정판을 내고 있다. ‘소문의 벽’과 단편들이 실린 전집 4권 『소문의 벽』이 지난주 출간됐다.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