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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그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2호 10면

악양 대축마을 뒷산에 600년이나 세월을 먹은 소나무가 있습니다. 크고 편평한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자라 ‘문암송(文岩松)’이라 불립니다. 옛날 시인 묵객들이 소나무 그늘에서 글도 쓰고 노래하며 붙여준 이름입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대축마을 사람들은 문암송을 귀히 여깁니다. 100여 년 전 큰 비가 내려 뒷산에서 산사태가 났는데 문암송이 흙더미를 막아 마을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 뒤로 문암송을 마을 수호신으로 여겨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맞추어 ‘문암제’를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민속행사 지원비를 받아 잔치가 푸짐하게 벌어졌습니다. ‘문암정’에서는 동네 유지들이 엄숙하게 제를 지내고 정자 밑에서는 부녀회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며 상 차림에 바쁩니다. 더러 위층에 있는 제관이 “제 지내니 좀 조용히 하쇼”라는 구박을 하면 잠시 조용했다가 바로 웃고 떠들어댑니다. 잔칫집은 시끄러워야 제 맛이고, 잔칫상은 상다리가 휘어야 제 맛입니다. 걸게 얻어먹었습니다. 백중날은 뼈 빠진 농사일을 끝내고 추수하기 전까지 아픈 허리 쓰다듬으며 설렁설렁 세월 보내자며 먹고 노는 날입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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