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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김연아 그리고 스티브 잡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2호 31면

박태환·김연아 선수가 세계 최고로 발돋움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중국은 10억 명이 넘는 사람 가운데 세계 최고를 고르고 고른다. 일본은 투자하고 공들여 세계 최고를 만든다. 한국은 어느 날 벼락처럼 천재가 뚝 떨어져 세계 최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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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보다 10억 가운데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건 당연하니 중국의 경우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일본은 이런 거다. 일본 수영계는 진작 아시아인의 신체적 한계를 감안하고 배영·평영에 집중했다. 해 볼만 한 종목에 전략 투자한 것이다. 기타지마 고스케도 그 열매였다. 그가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2관왕(평영 100·200m)에 올랐을 때 한국 언론은 ‘일본 수영 투자의 결실’이라며 부러워했다. 아사다 마오도 그렇다.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피겨스케이팅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팬층도 두터웠다. 아사다 마오는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과 뜨거운 관심이 만들어 낸 최고의 선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불모지에서 ‘알아서’ 훈련하고 성장한 선수가 13억 명의 가능성을 뛰어넘고, 시스템이 완성한 선수를 눌렀다.

우리의 경쟁력은 ‘근성 있는 천재’라는 얘기다. 모든 분야에 해당하진 않겠지만 박태환·김연아 선수가 그랬고, 다른 비인기 스포츠 종목에서도 종종 생기는 일이니 어느 정도 타당한 듯하다. 땅덩이로 보나, 인구로 보나 체급이 다른 중국·일본에 꿀리지 않는 건 으쓱할 만하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근성 있는 천재가 통하진 않는다. 오랜 시간 투자하고 인내하며 인재로 키워가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1등이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일이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이후 모두가 소프트웨어를 얘기한다. 왜 우리에게 구글이나 애플은 없는지,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은 없는지 묻는다. 기업의 대책도 나온다. 인수합병(M&A)을 하고 인재를 확보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인재에 대한 진짜 투자는 잘 안 보인다. “잡스가 한국인이면 애플은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85년 애플을 나온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넥스트스텝이라는 새 운영체제(OS)를 탑재한 PC를 만들었다. 시장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소프트웨어에 매달렸다. 95년 자신이 경영하던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대박을 내자 다시 넥스트의 소프트웨어에 투자했다. 90년대 후반 혁신이 필요했던 애플은 넥스트스텝을 새로운 OS로 채택했다. 그리고 잡스는 애플에 복귀했다.

넥스트스텝이 현재 애플의 OS인 맥OS의 근간이다. 맥OS는 아이폰의 OS인 iOS로 발전했다.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인 것이 2007년이었다. 마법처럼 혁신이 이뤄진 것 같지만 사실 아이폰은 십수년에 걸쳐 완성된 것이다. 오늘날 애플의 소프트웨어가 안정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일련의 소프트웨어 경쟁력 타령을 보면서 가장 중요한 걸 놓치는 건 아닌가 싶다. 날 때부터 천재였을지 모르는 잡스도 ‘천하의’의 잡스가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금메달 한 번 따고 끝나는 경기가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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