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거장들의 말년 작품은 왜 다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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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호 05면

1791년 3월 4일 오스트리아 빈. 모차르트가 무대에 섰습니다. 피아니스트로 대중 앞에 등장한 마지막 장면입니다. 9개월 후 세상을 떠났으니까요.모차르트는 빈 청중의 마음에 꼭 들 만한 곡을 만들어 왔습니다. 1악장엔 자신의 오페라 ‘돈 조반니’ 중 ‘은혜를 모르는 자는 나를 배반하고’라는 재치 있는 노래를 인용했습니다. 2악장엔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히트한 아리아 ‘사랑이여 돌아오라’를 차용했죠. 3악장은 스스로 ‘봄을 향한 하품’이라 이름 붙였을 만큼 아기자기하고 한가롭습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말년의 작품이라곤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27번, K.595이죠. 고통은 묻어 있지 않고 어린 아이의 노래처럼 순수하기만 합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1882~1951)의 말이 맞습니다. 그는 “모차르트는 어린 아이에게 쉽고 연주자에겐 어렵다”고 했죠. 감정이 기쁨인지, 슬픔인지를 분석하려는 어른들은 모차르트 특유의 아름다움을 어그러뜨리고 맙니다. 담담하게 연주해야 잘 들립니다. 어쩌면 말년의 작품에서 가장 밝은 기운을 내세운 것이야말로 모차르트의 정수겠죠.

위대한 작곡가들은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힘을 뺐습니다. 지독히도 무거운 작품을 썼던 주세페 베르디는 어떤가요. 그는 나라와 민족을 아끼던 작곡가였습니다. 이탈리아 독립의 역사, 셰익스피어의 비극 등을 가지고 오페라를 쓰면서 인간의 존재를 고민했죠. 26세에 첫 작품을 내놓은 뒤 여든까지 16편을 남겼습니다. 첫 히트작 ‘나부코’에서 억압된 민중의 심정을 달래준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에서 계급 문제를 깨닫게 했고, ‘맥베스’에선 권력의 허무함을 풀어놨습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는 ‘팔스타프’입니다. 실없고 바보 같은 늙은이 팔스타프는 동네 모든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합니다. 모차르트의 유명한 바람둥이 ‘돈 조반니’를 떠올리게 하죠? 팔스타프는 결국 ‘동네 창피’를 당합니다. 그리고 노래합니다. “온 세상은 농담이요 모든 사람은 타고난 바보다.” 바리톤에서 테너·소프라노에 이어 합창단까지 돌림노래처럼 이어받는 음악입니다.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 중에서도 마지막 노래죠. 2박으로 쪼개지는 경쾌한 리듬입니다. 마치 어린애들 놀이 같습니다.

이처럼 심각했던 베르디도 모차르트 식의 농담으로 작품을 마무리했습니다. 희한하게도, 어깨에 힘을 뺀 작곡가들은 더 위대해 보입니다. 비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내공이기 때문이겠죠.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1899~1987)의 마지막 콘서트를 떠올려 봅니다. 50여 년 동안 휘황찬란한 경력을 쌓았던 성악 반주자입니다. 함께했던 샬리아핀, 슈바르츠코프, 피셔-디스카우 등은 그 자체로 성악의 역사입니다.

67년 런던 은퇴 콘서트에서 무어가 연주한 곡은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쳐’입니다. 성악 없이 피아노로만 단순하게 연주했습니다. 욕심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영광을 음악으로 돌리는 연주입니다. 세상에 널린 ‘억지 아름다움’에 지친 이들에게 거장의 말년을 권합니다. wisehj@joongang.co.kr

A 어깨에 힘 빼 더 위대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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