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0살 넘은 잘츠부르크의 ‘젊은 선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젊은 지휘자 상’을 받은 아이나스 루비키스. 라트비아 태생으로 국제 경험이 별로 없었던 그는 이번 축제에서 수상하며 세계적 연주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사진작가 실비아 렐리]

13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33세 지휘자의 날이었다. 주인공은 라트비아 태생의 아이나스 루비키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젊은 지휘자상(Young Conductors Award)’ 수상자다. 그는 이날 저녁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 시작된 이래 일류 음악제로 자리하고 있다. ‘젊은 지휘자상’을 마련한 건 지난해. 독일의 다비드 아프캄이 첫 수상자였다.

 이 축제의 예술감독인 마커스 힌터하우저는 “잘츠부르크는 이제 가장 오래되고 인기 있는 축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무명의 지휘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등 다른 축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피아노·바이올린 등 소위 ‘잘 되는’ 장르 대신 지휘를 선택한 것 또한 ‘젊은 예술가 농사를 제대로 짓겠다’다는 잘츠부르크의 철학을 보여준다.

 루비키스는 라트비아 리가의 성당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같은 지역에서 지휘자의 꿈을 키우다 이번 수상자로 선정됐다. 세계 각국에서 온 50여 명과 경쟁해 이룬 쾌거였다. “이미 유명해진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잘츠부르크는 선망의 무대다. 여기에서 내가 30대에 공연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는 들뜬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심사위원이 특히 화려했다. 21세기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피에르 불레즈가 위원장을 맡았다. 카라얀 이후 오스트리아 지휘자의 자존심을 세워준 프란츠 벨저 뫼스트, 몸값 높은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가 참여했다.

 루비키스는 잘츠부르크의 명성에 어울리는 실력을 보였다. 13일 수상 기념 무대의 연주곡은 스트라빈스키 ‘불새’(1910)와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2번(1966) 등이었다. 현대적 음향을 만들어야 하는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루비키스는 섬세하게 듣는 능력과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포로 지휘대를 꽉 채웠다. 연습 기간이 길지 않았던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호흡도 정교하게 다듬어냈다.

 이처럼 잘츠부르크는 젊은 지휘자는 물론 현대 음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젊은 지휘자상의 도전자들은 20세기 이후 음악을 필수로 연주해야 한다. 예술감독 힌터하우저는 “현대 음악이 위기에 처해 있다. 많은 자원과 경험을 가진 잘츠부르크 축제가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올해 축제에서는 야나체크의 1926년 오페라 ‘마크로풀로스 사건’에 관심이 집중됐다. 거의 공연되지 않는 희귀작이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가 다소 ‘인기 없는’ 장르에 투자할 수 있는 배경에는 기업의 후원이 있다. 식품 회사인 네슬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꼭 20년 후원했다. ‘젊은 지휘자 상’ 역시 네슬레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공동 제정했다. 네슬레는 우승자에게 1만5000 유로를 상금으로 준다.

 페터 브라벡 레트마테 회장은 “20년 전 후원을 시작할 땐 주주들의 반대가 많았다. 또 음악제 쪽에서는 ‘성스러운 음악제의 상업화’라며 비난했다. 우리는 음악적 내용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 금전 후원만을 하며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미래 지향적 철학을 공유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매년 잘츠부르크에서 젊은 지휘자가 한 명씩 스타로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글=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김호정 기자
사진=사진작가 실비아 렐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1920년 시작된 유럽의 대표적 클래식 축제. 매년 여름 시내 곳곳에 있는 14개 극장에서 오페라·콘서트·연극 등 200여 개 가까운 공연이 펼쳐진다. 올해는 지난달 27일 시작해 30일까지 열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