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26> 세리 키즈가 더 멀리 날지 못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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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골프 다이어리 독자들에게 내는 두 번째 문제다. 최경주와 양용은, 박세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뛰어난 골퍼?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절반쯤 맞다. 골프 다이어리가 원하는 답은 그들이 골프를 하기 전 다른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최경주는 역도, 박세리는 투포환 등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양용은은 정식 선수를 하지 않았지만 매우 진지한 아마추어 보디빌더였다.

타이틀리스트 퍼포먼스 인스티튜트 설립자이자 의학박사인 그레그 로즈와 한국 선수들이 LPGA 투어에서 고전하는 이유에 대해 토론하다가 흥미로운 ‘윈도 이론’을 들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특정한 시기에만 열리는 창문이 있다는 것이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말과 비슷한 개념이다. 공을 멀리 칠 수 있는 창문이 열리는 시기가 있는데 많은 한국 선수들이 이를 놓쳤다고 그는 본다.

장타를 칠 수 있는 기반은 몸의 스피드와 힘이다. 스피드를 얻을 수 있는 윈도는 열 살 즈음, 파워로 가는 창문은 10대 중반에 열린다고 한다. 몇 년 후 창문은 닫힌다. 창문이 열린 시기에 소통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세계에는 갈 수 없다. 10대 때 격렬한 운동을 통해 스피드와 힘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리 노력해도 그 거리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로즈는 거리가 짧아 고생하는 한국 선수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아마 부모·스윙코치들이 이 창문을 열지 못하게 했거나, 혹은 억지로 닫아버렸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경주와 양용은, 박세리는 어릴 적 다른 운동을 통해 이 창문을 열고 힘과 스피드를 얻었는데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킨다는 요즘 골프 대디들이 오히려 이 창문을 닫은 것이다. 그들은 최경주와 박세리가 보여준 연습장의 땀방울과 달콤한 결실을 봤지만 어릴 적 어떻게 성장했는지 등의 큰 그림은 보지 못했다. 혹은 빨리 성적을 내려는 조급한 마음에 눈을 가렸을지도 모른다.

청소년기에 하루 종일 연습장에서 공을 치게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 시간에 다른 스포츠를 하면서 재미있게 뛰어노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서양의 여자 골퍼들은 체조·하키·축구 등을 하다가 10대 중반 이후 골프를 진지하게 하게 된다. 안니카 소렌스탐은 테니스를 했고 로레나 오초아는 만능 스포츠 우먼이었다.

로즈 박사는 “정말 골프를 잘하려면 소프트볼이나, 하키 등 골프와 비슷한 볼을 때리는 격한 스포츠를 하면서 힘과 스피드를 키운 후에 골프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서양 남자 선수들은 럭비·축구·농구 등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중 선수급으로 농구를 했던 더스틴 존슨과 개리 우드랜드는 본격적으로 골프를 하게 되자 손꼽히는 장타자가 됐다.

청소년기 중엔 또 다른 창문도 있다. 급성장 시기에는 몸이 아주 빨리 변하기 때문에 무릎 등이 아프고 걷는 것도 어색하다. 당연히 스윙도 급격히 변형된다. 미국에서는 급성장기의 청소년은 몸의 사이즈가 커지는 시기라고 보고 대회에 많이 내보내지 않고 다른 운동을 하게 한다. 이런 몸으로 대회에 나가면 슬럼프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을 연습 부족이라고 몰아세울 것이다. 몸이 망가질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매트에서 연습하는 경우는 더 나쁜 결과가 나온다. 매트에서는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공을 약하게 치든지 땅에 닿지 않도록 퍼올려치는 버릇이 생긴다. 로즈 박사는 한국 선수들은 공을 똑바로는 치지만 몸이 스피드를 못 내고 임팩트도 약해 거리가 안 난다고 진단했다.

몸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학교에 안 가고 줄곧 공만 치는 주니어 골프 선수는 한국밖에 없다. 로즈가 상담한 한국의 유명 선수 중 3명은 “골프가 나의 청소년기를 빼앗아갔다”고 여기며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창문을 열어줘야 한다. 상상력과 역경을 이기는 지혜, 삶의 즐거움과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해줘야 한다. 그것이 골프가 알려주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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