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1991년 쿠데타 진압 … 실권 장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1996년 6월 록 콘서트에 참석한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무대 위에서 댄서들과 춤을 추고 있다. [로스토프 AP=연합뉴스]

1991년 8월 러시아 의회에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메모를 건네며 낭독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1998년 8월 옐친 대통령(오른쪽)이 크렘린궁에서 업무 보고를 위해 들어온 푸틴 연방보안국 국장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그것은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1991년 8월 19일 보리스 옐친(1931~2007)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의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앞에서 탱크 포탑 위에 올라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개혁·개방정책)에 반기를 든 공산당 보수파가 쿠데타(18~21일)를 일으켜 그를 체포하려 혈안이 돼 있던 때였다.

옐친은 탱크 위에서 러시아 국민에게 “쿠데타 세력에 당당히 맞서자”고 촉구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던 세력에 맞선 옐친은 ‘용기 있는 리더십’으로 공산주의 소련을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이 역사적 장면이 신(新)러시아의 시작이다.

 일요일이던 그해 8월 18일 밤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국방·내무부의 공산당 보수 강경파들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하고 흑해 크림반도의 별장에서 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사임을 요구했으며 이를 거절한 고르바초프를 별장에 감금했다. 그리고 탱크부대를 모스크바에 진입시켰다. 쿠데타 세력은 고르바초프로부터 핵미사일 발사장치까지 빼앗았다. 모스크바 인근 별장에서 이 소식을 들은 옐친은 쿠데타에 대항하자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을 작성했다.

 이튿날 역사적인 탱크 포탑 연설이 이뤄졌다. 옐친은 쿠데타군이 모스크바를 장악할 경우 임시정부를 만들어 대항할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쿠데타군이 모스크바 시내로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 명의 옐친 지지자들이 의사당 주변으로 몰려들어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20일 청년 3명이 쿠데타군의 총에 맞아 숨지자 더 많은 시민이 모여 항의했다. 국제적 비난도 거세졌다. 그러자 쿠데타에 참가한 군부대는 갈팡질팡하다 21일 탱크를 철수시켰다. 쿠데타 주모자 대부분은 곧바로 체포됐다.

 공산체제로의 복귀를 꾀했던 쿠데타는 72시간 만에 진압됐다. 옐친은 쿠데타 진압을 계기로 공산당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등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손발을 묶었다. 정치적 치명상을 입은 고르바초프는 그해 말 사임하고 옐친이 신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을 이끄는 최고 권력자가 됐다.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