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에서 정상을 향하는 축구가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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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 대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모든 여자축구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했던 헤브론여자실업축구단.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타팅멤버에는 9명의 이름만 올라와 있었다. 교체선수는커녕 출전할 수 있는 선수가 9명밖에 되지 않는 그런 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여자축구에서 언제나 성실하고 모범적인 플레이로 주목을 받아왔던 팀이기도 하다.

11:9로 시합에 나섰던 헤브론여자축구단이 이제는 15명의 선수로 팀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꾸준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대학강호 경희대(제2차 코리안 리그)와 울산과학대(제4회 도로공사배)를 잡기도 하며 창단 3년 동안 준우승과 3위 입상을 각각 1번씩 기록할 정도로 실력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돈 만원이 아쉬웠던 시절

3년 전인 1997년 낫소여자축구단이 경영악화로 팀이 해체됐다.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축구였지만 소속팀 여자선수들은 이제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곳에서도 이들을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또 하나의 삶의 목표였던 축구화를 벗어야 할 때 그들이 느낀 것은 '축구인들의 차가운 외면'이었다. 고향으로 낙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 선수들과 인연이 닿은 곳이 바로 헤브론.

어린이축구교실을 운영하던 헤브론의 류영수감독과 7명의 선수들과 믿음 하나로 볼을 차기 시작했다. 이것이 헤브론여자축구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창단한 지 3년째 접어드는 헤브론 여자축구단이지만 아직 창단식 한 번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 실업팀이라고 하지만 조직적인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축구단이 이제는 후원인이 100여이 될 정도가 됐다. 하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후원인들과 교회를 통한 후원으로 팀을 꾸려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경제적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다음은 전도사인 류영선감독이 전해주는 창단 직후 배고팠던 시절의 일화 한 토막. "조직적인 지원이란 기대할 수 없었죠.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은 여자몸인 선수들이 생리날이 되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야 했는데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을 때였죠. 돈 만원이 아쉬운 시절…. 선수들이 행여나 감독이면서 전도사인 제 가슴을 아프게 할까봐 아무 말없이 기도하며 참고 지낸 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모범적이면서도 인기있는 팀으로 헤브론여자축구단 15명의 선수들은 국가대표 출신 3명을 포함해 19∼29세까지 폭넓은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력에서는 그 어떤 팀보다 뒤지지 않지만 아직 실력면에서는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헤브론여자축구단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한 플레이의 결과였다.

헤브론 류영선감독에게는 한 해를 마감하며 새 천년을 맞아 새로운 목표 3가지를 설정했다. ▲가장 모범적인 팀 ▲가장 조직력이 있는 팀 ▲가장 인기있는 팀이 바로 그것이다. 헤브론여자축구단이 대회에 참가할 때 필요한 전술은 기술적인 완성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게 경기에 임하는 자세인 것이다. 성실하게 생활하며 감독과 선수들이 하나인 모습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는, 그리고 여자다운 아름다움을 그라운드에 뿜어낼 수 있는 축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 류영선감독의 소박한 목표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단을 이끌다 보니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죠. 여기서 좋은 선수란 잘 하는 선수라기보다는 성실한 선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실력을 우리는 한 발 더 뛰는 것으로 극복해 내려고 합니다. 시합에 나가기 전 상대팀을 위해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상대팀을 분석하며 장단점을 파악하려고 하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헤브론여자축구단은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헤브론여자실업축구선교단 : 032)505-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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