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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입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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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담배를 피우면 경찰에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배타적이던 담배 시장이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활짝 열렸다. 당연히 그 뒤 시장점유율은 상승일로였다. 지금은 42%에 달한다. 이름도 ‘수입담배’로 바뀌었다. 외제차도 비슷한 궤적(軌跡)을 밟아 왔다. 호화생활자 세무조사 명단에 외제차 소유자는 단골손님이었다. 세워둔 차는 백미러가 부서지거나 옆면에 흠집이 나기 일쑤였다. 불과 13년 전, 외환위기 직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었다. 부정적 이미지를 덜어내기 위해 호칭도 바꿨다. ‘수입차’로. 표백(bleaching)의 원리로 변색된 이를 하얗게 만들지만 업계에서 미백(whitening)이란 말을 지어낸 것과 같은 이치다.

 차 시장은 담배보다 한 해 먼저 개방됐다. 87년 2000cc 이상과 1000cc 이하만 수입이 허용됐다. 그해는 고작 10대 팔렸다. 94년부터 관세가 8%로 낮아지고 취득세도 줄어들면서 속도가 붙었다. 그래도 증가세는 더디기만 했다. 수입차 점유율이 1%를 넘어선 건 개방 15년이 되던 2002년. 벤츠·BMW·렉서스 등 비싼 차 위주의 시장에 혼다·폴크스바겐 등 중급 브랜드가 가세하면서 2007년 5%를 넘어섰다.

 올해는 수입차 판매가 처음으로 1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비슷하면 수입차를 타겠다는 젊은이도 많다. 국산차의 애국심 마케팅 시대는 이제 끝났다.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싸구려란 인식을 털고 잘 팔리는 것 또한 굿뉴스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주 미시간주의 한 배터리 공장을 방문해 “많은 미국인이 기아차와 현대차를 운전한다. 한국인들도 포드·쉐보레·크라이슬러를 몰기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아직도 한국에서 미국 차가 안 팔리는 배경엔 뭔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세무조사 등 과거에 입력된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탓이다. 지금 미국 차를 차별하는 정책이나 장벽은 없다. 단지 소비자들이 덜 좋아할 뿐이다. 유럽 차는 계속 잘 팔려 지난해 수입차 시장에서 65%를 넘어섰다. 그 다음은 일본 차다. 미국 차는 2003년 16%에서 지난해 8.5%로 후퇴했다. 미국에서 조사하는 인기차 명단에도 미국 차는 별로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국민에게 그 이유를 먼저 물어볼 일이다.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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