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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바왐바 신작 〈WYSIWYG〉

중앙일보

입력

행운은 언제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들기 마련이다. 첨바왐바(CHUMBAWAMBA)에게 'Tubthumping'은 바로 그런 행운이었다. 춤추기에 적당한 댄스 비트와 '나는 지금 쓰러지지만 곧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억누를 수 없기에'라는 의미심장한 외침이 빌보드와 MTV를 통해, 또한 TV 시트콤의 주제가나 운동 경기장의 응원가로 들려지며 첨바왐바는 'Tubthumping'를 통해 비로소 그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밴드가 결성된 지 꼭 13년만의 일이었다.

영국 노동자들이 일과 후 펍(Pub)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열창할 만한 이 댄서블한 트랙이 첨바왐바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Tubthumping' 단 한 곡으로 이들을 평가했다가는 큰 오산이다. 〈탁자를 치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Tubthumper)〉('97)이라는 앨범명처럼 첨바왐바는 그 누구보다도 통렬한 언어와 단호한 자세로 그릇된 국가 정책을 비판하고 상업적인 쇼비즈니스 세계를 매도하는 팝 계의 강경 투사들이기 때문이다.

1984년, 여성 3명과 남성 5명의 라인업으로 영국 요크셔의 공업 도시 리즈에서 결성된 첨바왐바는 모든 멤버가 한 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며 국가와 법, 감옥과 재산이 없는 사회를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는 무정부주의자들이다. 무정부주의 펑크 밴드 크래스(CRASS)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RAGE AGAINST THE MACHINE)처럼 이들 역시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비전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음악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85년에 설립한 자주(自主) 레이블 에짓-프롭(Agit-Prop)을 통해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보수주의 정부와 노동자들을 길바닥으로 내모는 산업자본주의를 향한 첨바왐바의 맹렬한 비난이 시작되었다. '라이브 에이드(Live Aid)'의 상업성을 비꼰 데뷔작 〈Pictures Of Starving Children Sell Records:Starvation, Charity And Rock 'N' Roll - Lies And Tradition〉('86)와 87년 영국 총선에 대한 항변의 메시지를 담은 〈Never Mind The Ballots... Here's The Rest Of Your Lives〉('87), 인두세를 부활시키려는 대처 정부에 일침을 가한 〈English Rebel Songs 1391-1914〉('88)와 동성애자들의 권리 옹호를 주장한 〈Anarchy〉('94), 그리고 밴드의 지난 음악 여정을 반추한 컴필레이션 앨범 〈Uneasy Listening〉('99) 등 첨바왐바가 발매한 10장의 앨범들은 당시의 정치/사회상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지난 97년, 독일 EMI와 계약 맺고 발매한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 〈Tubthumper〉('97)와 그 수록곡 'Tubthumping'이 거둔 성공으로 인해 비록 자신들이 비난해온 쇼비즈니스계의 화두로 회자되었지만 신작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00)을 통해 들려지는 첨바왐바의 확고한 신념과 서슬 퍼런 입담은 결코 녹슬지 않았다.

이미 첫 싱글 'She's Got All The Friends'의 B면 트랙 'The Passenger List For Doomed Flight #1721'에서 빌 게이츠와 루퍼트 머독,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 그리고 보노(U2의 리드 싱어)와 커트니 러브(HOLE의 리드 싱어이자 커트 코베인의 미망인) 등 정치/미디어 계의 거물들과 록 스타 몇몇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시킨 이들은 인터넷을 정복하려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또 다른 야심을 다룬 'Www Dot'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의 모습을 담은 'Pass It Along', 그리고 99년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상업성을 매도한 'I'm Not Sorry I Was Having Fun' 등 인터넷과 미디어가 조장한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의 병폐를 노래하고 있다.

언제나 가사보다 긴 해설로 앨범 부클릿을 가득 채우는 첨바왐바의 음악적 색채는 지난 10장의 앨범을 통해 보여진 그들의 정치/사회적 이슈의 다양성만큼이나 방대하다. 팝과 록, 포크와 아카펠라, 블루스와 재즈, 힙합과 댄스는 물론이거니와 테크노와 인더스트리얼, 스카와 펑크, 그리고 전통 민요에 이르기까지 거의 손 안 대는 장르가 없을 정도로 이들의 사운드는 잡식성이 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수록곡 중 절반이 채 2분도 되지 않는 짧은 곡들로 채워진 〈WYSIWYG〉에서 첨바왐바의 이러한 음악적 특징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오프닝 트랙 'I'm With Stupid'에서 들려진 강렬한 비트의 록 사운드는 이내 어쿠스틱 사운드와 오케스트레이션이 주조를 이룬 서정적인 멜로디('Shake Baby Shake')로 돌변하고 곧 이어 등장하는 'Pass It Along'에서는 스크래칭과 래핑을 전면에 내세운 힙합 사운드의 전형을 들려준다. 'I'm In Trouble Again'에서는 이들이 스카 펑크 밴드인가 싶다가도 'Social Dogma'와 'Celebration Florida'를 들으면 영락없는 포크 밴드이고 'I'm Not Sorry I Was Having Fun'에서는 또 다시 뉴 웨이브 밴드로 탈바꿈한다. 카바레 스타일의 'Jesus In Vegas'와 앤드류 로이브 웨버의 뮤지컬에 등장할 만한 'The Standing Still', 그리고 비지스(BEEGEES)의 고전을 어쿠스틱한 감각으로 커버한 'New York Mining Disaster'에 이르기까지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트랙들이 장르를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사운드와 다층적인 구조로 겹겹이 싸여 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사운드로 대변되어지는 첨바왐바 사운드의 핵심은 절묘한 샘플링과 우수한 프로듀싱에 있다. 〈Shhh〉('92)의 수록곡 'Nothing That's New'에서 '당신이 만든 노래는 한 번은 불려졌던 것/태양 아래 결코 새로운 것은 없다/훔쳐라'로 말했듯이 비틀즈의 전통 팝송에서부터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팝 사운드의 모든 전형을 한 데 담아 그것을 앨범이 발매되는 시기의 음악적 조류에 걸맞게 비벼내는 첨바왐바의 탁월한 조합력은 그들의 문제 의식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첨바왐바는 화려한 음악 경력보다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비전으로 더욱 부각되는 그룹이다. 하지만 그들의 극단주의적 사고방식이 부담스럽다고 첨바왐바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정치적 의견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첨바왐바는 음악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들려질만한 가치가 있는 그룹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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