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위험한데 한국은 오죽할까” … 외국계의 ‘편견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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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한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외국계 증권사를 ‘자의적’이라고 공개 비판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권 원장은 지난 12일 20개 외국계 금융회사 사장과의 간담회에서 “일부 외국계 증권사가 한국의 대외상환능력을 나쁘게 평가하는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는 객관적 기준이 아닌 자의적 기준”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들 증권사의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적’이 누구인지는 시장에 다 알려져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1일 ‘자금 조달 리스크에 따라 충격 흡수 정도를 평가한 결과 한국이 아시아 8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외 부채상환능력이 낮고 예대율은 높아 중국은 물론 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 등보다도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노무라 금융투자도 지난 11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2.5%로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4%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입장과는 차이가 크다.

 금융당국도 권 원장의 발언이 이들을 겨냥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1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모건스탠리 보고서는 우리보다 관련 수치가 더 나쁜 호주는 비교 대상에서 빼고 한국을 최하위로 하고 있다”며 “비교 대상 국가들은 모두 개방화 정도가 낮아 우리와 수평 비교가 어려운 나라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노무라 보고서에 대해서도 “통상 사용되는 단기외채 대비 외환보유액을 쓰지 않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면서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외국계 증권사가 한국 경제를 박하게 보는 이유로 ‘홈 바이어스(home bias)’를 꼽는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유럽 등의 금융사는 자국이 위기에 빠지자 ‘우리도 위험한데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은 오죽하겠느냐’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외국계 보고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고서를 놔두면 시장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걱정이다. 권 원장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노무라금융투자 권영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투자자로서는 발생 가능성이 아주 작더라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쁘게 전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윤창희·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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