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로마제국 무너뜨린 나랏빚, 미국은 걱정없다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미국에 이어 프랑스의 신용등급 위기설도 나온다. 최근 주가가 크게 하락한 프랑스 제2의 은행 소시에테제네랄 자동지급기 앞에 선 고객들 모습. [블룸버그]

국가부도
발터 비트만 지음
류동수 옮김, 비전코리아
264쪽, 1만5000원
 

얼마 전 미국 방송사 뉴스에 일제히 카운트다운 전광판이 등장했다. 미국의 국가부도까지 남은 ‘D-데이’를 알리는 전광판이었다.

 그 동안 미국 정부는 새로 빚을 내서 기존의 부채를 갚는 ‘돌려막기’를 해 왔다. 그런데 그 규모가 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행히 의회의 극적 합의로 국가가 질 수 있는 부채 규모를 늘린 덕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러나 체면은 상당히 구겨졌다. 줄곧 최고등급(AAA)이던 신용등급도 한 단계 떨어졌다.

 그리스·스페인에 이어 미국까지. 최근 들어 ‘국가부도’란 말은 전세계를 유령처럼 떠돈다. 글로벌 금융위기 탓이겠지만 사실 국가부도라는 것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로마제국 역시 상당한 채무국가였다. 민간 대부업자나 지방총독 등에게 진 빚으로 군사력을 유지하고 시민에게 각종 공짜 복지도 제공했다. 그러다 시민의 수가 늘면서 은 함량을 확 줄인 주화(鑄貨)를 대거 발행했다. 정복 전쟁을 벌여 조공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전쟁 자체에 쓰인 돈을 막기조차 힘들었다. 서기 300년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면서 화폐경제가 무너졌다. 이후 로마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다 멸망한다. 그 위세 등등했던 제국의 발목을 잡은 것도 국가부도였던 셈이다.

 최근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지켜보며 미국 역시 이런 로마제국의 길을 걷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미국의 국가부도는 없을 거란 게 저자의 분석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오직 자국 통화인 달러화로만 부채를 지기 때문에 지급불능 선언을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절박한 상황이 됐을 때도 필요한 만큼 달러를 찍어내면 된다. 결국 미국에겐 재정 조달 한도란 게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다고 부채를 무한정 늘릴 순 없다. 달러 가치가 뚝 떨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간 달러의 가치는 줄곧 하락세였다. 달러는 스위스프랑에 대해 1973년 이래 4분의 1로 떨어져 2009년 가을엔 두 화폐 가치가 대등해졌다.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이 역시 기우란 분석이다.

 전세계 총생산량(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달한다. 일본·독일·중국의 GDP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 또 세계의 거의 모든 원자재가 뉴욕과 시카고에서 달러화로 거래된다. 즉 여전히 절대 강자인만큼 달러화의 지위는 쉽게 변하지 않을 거란 이야기다.

김필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