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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편지 <낙산에 가서 폭설을 만남>

중앙일보

입력

봄의 동해는 7번 해안도로의 철쭉꽃들을 부르고 사랑에 목매인 사람을 부릅니다. 봄마다 속초- 강릉- 포항 간 7번 국도를 오르락내리락 한 게 벌써 십여 년입니다. 혼자 차를 몰고 한계령을 넘어 속초로 갑니다.

속초까지 가며 줄곧 메라 요시카즈를 듣습니다. 일본의 카운터 테너 가수. 에니메이션 <월령 공주>의 주제곡을 부른 남자. 누군가는 그가 여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세를 했다고 말합니다. 또 누군가는 그가 선천적으로 다리가 짧은 불구라는 소리를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레코드점에 들러 우연히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만 덜컥 목이 매이고 말았습니다. '썩은 조개만이 진주를 품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 목소리의 배후엔 그렇게 원죄와도 같은 깊은 상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봄바다로 가는 길은 그렇게 메라 요시카즈와 함께였습니다.

올해는 좀 이르게 왔는지 속초 바다는 겨울과 봄 사이에서 남회색으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먼 바다에 다들 꽃 한송이를 던지고 여인들은 저녁참에 어딘가로 쓸쓸히 돌아갑니다. 낙산을 뒤로 미루고 속초에서 하루를 묵습니다.

대포항에 나가 요즘 많이 잡혀 올라온다는 가자미 회를 먹습니다. 4월이면 깨끗한 몸빛깔의 숭어가 몰려들 텐데 아직 그런 기별은 없습니다. 숭어처럼 관능적으로 생긴 물고기는 아마 없을 겁니다. 숭어는 별이 지는 밤 반딧불이 모여 있는 개울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여인의 벗은 몸을 닮았습니다. 또한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늦게 자고 일어난 여자의 옆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작년 봄에는 내내 속초항에서 숭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밤늦게 돌아와 바다 비린내에 젖은 몸을 씻고 밤바다를 내려다 봅니다. 저녁참에 바다를 떠난 여인들이 다들 어디로 갔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머나먼 서울로 아무에게나 무의미한 전화를 걸어봅니다. 취한 듯 수화기를 침대 밑에 떨어뜨리고 잠이 듭니다.

전날 대포에서 먹은 술이 덜 깨 아침 늦게 일어납니다. 정오나 돼서 양양으로 갑니다. 가는 길에 다시 대포리와 물치를 지납니다. 곧 먼 빛으로 낙산이 보이자 소나무 숲에 몸이 반쯤 가려져 있는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낙산으로 수항여행을 다녀와서 비망록에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낙산은 언제나 바다가 되어 떠나가고...뿔뿔이 꽃이 되어 떠나가고..."

그후 열 번쯤 더 낙산에 왔을 겁니다. 언제나 7번 국도를 따라 속초에서 강릉 쪽으로 내려가다 먼 발치로 해수관음상을 보는 것입니다. '관음(觀音)'은 산스크리트어로 '파드마 파니' 곧 '모든 소리를 듣는 자'라고 합니다. 뭇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덜어주는 자라는 뜻이겠지요. 그이는 일년 삼백육십오일 바다를 바라보며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바다로 떠나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수 향일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양양 낙산사는 남한 땅 3대 기도 도량이라고 합니다. 한결같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습니다. 그중 낙산을 저는 가장 즐겨 찾습니다.

해수관음상이 있기에 낙산은 앞뒤가 모두 창망합니다. 낙산에 올라서면 뒷전의 설악과 네 개의 가파른 고개도 다들 시퍼렇게 출렁이는 바다로 변합니다. 또한 낙산에 가면 벼랑 끝에 홍련암이 있지요.

더러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홍련암 마룻바닥엔 가로세로 10cm쯤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물론 마룻조각으로 막아져 있어 가운데 십 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들어올려야 구멍이 드러납니다.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나서 그 네모난 마룻조각을 들어올리면 휘황한 꿈인 듯 바다가 엿보입니다.

벼랑 사이로 파도가 철썩이는 게 고스란히 들여다보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다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누가 언제 마룻바닥에 구멍을 낼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같은 암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그 마룻구멍을 통해 바다를 들여다보며 내 젊은 날의 고해를 합니다. 짐짓 거짓 울음을 울어보며 벌써 버려야 했을 묵은 상처의 기억을 바다로 떠나 보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본들 남이 들어도 될 소리는 나오질 않습니다.

한번은 정말 홍련암 마룻구멍에 얼굴을 숨기고 제대로 울어본 적이 있습니다. 첨벙첨벙 바다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소리내어 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내처 7번 국도에 핀 철쭉을 흘겨보며 포항을 지나 경주 석굴암까지 갔던 날이 있었습니다.

홍련암을 떠나오며 내내 그날 비를 맞고 들어간 당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속초로 올라와 한계령을 넘는데 겨울이 거꾸로 닥친 듯 폭설과 만납니다. 봄바다를 보러 온 게 무색할 정도로 강원도는 겨울의 마지막 눈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라디오에선 대설주의보를 발령하고 사위는 어둠과 함께 첩첩이 눈에 쌓여 가고 있습니다. 위험스럽게 한계령을 돌아내려와 강릉으로 갔으나 대관령도 폭설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는 수 없이 경포대로 차를 끌고가 깊은 밤 낯선 여관에 듭니다.

그렇게 하루 늦어진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었을까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강릉에 있는 '참소리 박물관'으로 갑니다. 전에 그곳에 대해 들은 적이 있으나 여태까지 가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 번 전화로 길을 확인한 끝에 도착한 '참소리 박물관'은 아주 놀라운 곳이었습니다. 강릉 외곽의 낡은 아파트와 공장 사무실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오디오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에서부터 유성기는 물론이고 오늘 날의 명품 오디오까지 빽빽이 전시돼 있었던 것입니다. 이 박물관은 1992년 11월 손성목이라는 분이 사재를 털어가며 오랜 세월 세계 각지에서 사모은 기기들이라고 합니다.

안내를 맡은 여직원이 이층 전시장으로 관람객들을 데려가더니 LD를 틀어주더군요. 곧 화면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해진 사라 브라이트만과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함께 부르는 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때, 어쩐 일인지, 아주 잠깐, 코끝이 시큰해지며 웬일인지 홍련암 마룻구멍이 떠올랐습니다.

메라 요시카즈와 안드레아 보첼리. 고해를 마친 불구의 사내 둘. 그들이 홍련암에서 울면 바다도 꽃을 보여주지 않을까, 혹은 그런 생각을 하며 <참소리 박물관>을 떠나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날 얇은 옷에 비를 맞고 들어가 혹 감기에 걸리진 않았는지요. 실은 뒤에서 종아리를 여러 번 훔쳐보았는데 알고 있었는지요. 술을 마시면 당신의 걸음걸이가 8분의 6박자로 변한다는 사실은 또 알고 있는지요. 언제 그 걸음걸이로 철쭉꽃 핀 해안의 모래사장을 저녁 몇 분만 함께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흙투성이가 된 차를 끌고 방금 돌아왔습니다. 다녀와서야 이번 여행길이 당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퍼뜩 깨달았습니다. 고해는 아니더라도 남몰래 고백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라면 숭어철도 아닌데 속초, 양양에 강릉까지 갔을 리는 없었을 겁니다.

어제 홍련암 마룻구멍을 떠난 한 사내의 목소리가 지금쯤 바다 끝에 연꽃이 되어 떠 있을지...글쎄, 나도 모를 일입니다.

폭설의 꿈을 꾸며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되풀이해서 듣다가 겨우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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