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반성문 쓰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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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팀장이 고객들에게 보낸 ‘반성문’이 담긴 투자전략 보고서(작은 사진).


심재엽(41)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수년째 각종 애널리스트 평가에서 상위에 오르는 16년차 베테랑 애널리스트다. 그런 그가 8일 내놓은 ‘투자전략 보고서’ 뒷부분에 눈길을 끄는 글을 올렸다. A4 용지 절반 분량의 이 글은 제목이 ‘2011년 하반기 코스피 하우스 뷰(전망치) 수정 제시’였다. 제목만 봐서는 지난주 주가 폭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망치를 조정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골자는 최근 주가 급락과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반성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보고서 첫머리를 “시장이 당사 전망치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8월 전망치를 크게 벗어난 급락을 예상하지 못한 점, 어려운 시장에 도움이 되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는 글로 시작했다. 극도의 혼란에 빠진 국내외 증시를 전망하는 심 팀장 같은 애널리스트의 심정은 어떨까. 혼란의 와중에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쓴 그를 인터뷰했다.

김창규 기자

- 고객에게 반성문을 썼는데.

 “최근 주가 급락 이유는 한국 자체의 리스크보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신용리스크가 체력적 위험까지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더 감안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 지난 금요일(5일) 이미 국내 코스피가 내가 전망한 하반기 전망 하단(2000)을 벗어나 있었다. 주가가 3일 만에 급락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젠 투자자에게 반등을 기다리라고 하기엔 너무 무리라고 생각했다. S&P의 신용등급 강등은 내가 예상한 것(9~10월)보다 훨씬 빨랐다.”

 -코스피 전망치를 종전 2000~2550에서 1850~2300으로 크게 낮췄다. 왜 전망이 자꾸 틀리나.

 “올해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세 가지나 발생했다. 벌써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운동, 동일본 대지진,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발생했다. 이런 것까지 예상하고 전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의 설명대로 올해는 대형사건이 유난히 많다. 그가 말한 3대 초대형 악재를 제외하고도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 같은 굵직한 진행형 악재가 세계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라면 이런 악재들도 어느 정도 고려해 상하 진폭을 예측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 증시에 예상 못한 일은 자주 일어나는 것 아닌가.

 “3개의 대형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건 정말 드물다. 지금 유럽과 미국 정부도 그날그날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응하고 있다. 우리도 그날그날 대응하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 투자자는 어떤 상황인가.

 “8월 급락을 예상한 증권사는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인지 현재 투자자는 상당히 위축돼 있다. 시장 상황에 떨고 있다. 이런 투자자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했다. 오늘 장 초반 1900선이 지지돼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급락세를 보여 투자자는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 반성문에 대한 투자자의 반응은.

 “일단 어느 정도 우리 심정을 이해하는 듯했다. 초대형 변수를 감안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것은 시장의 움직임을 발 빠르게 분석해 제공하는 것이다.”

 - 오늘 증시는 왜 이렇게 급락했나.

 “70년 만에 발생한 초유의 사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초 시장의 파장은 불가피하다. 현 장세는 주가와 기초체력상 지표로 판단할 상황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안정이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유럽·중국·일본 등 각국의 추가적인 대안 만들기가 증시의 패닉을 막아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9~10일(현지시간)이 세계 증시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720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무난히 발행할 수 있을지 관심사다. 중국의 미국 국채에 대한 대응,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 발표 등이 수반된다면 세계 증시의 하락세는 진정될 것이다.”

◆심재엽=1970년생으로 96년 KGI증권에 입사하며 애널리스트로 첫발을 디뎠다. 이후 미래에셋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을 거쳤으며 올해 1월부터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부 투자전략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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