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또 하나의 압구정(狎鷗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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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서울의 압구정동 아파트의 재건축이 화제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현대건설이 배나무 밭인 압구정리(狎鷗亭里)에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였다. 지금 그 아파트단지가 노후되고 한강 루네상스의 이름으로 50층의 새로운 아파트 부촌으로 대 변신을 준비중이다.

한국에서는 압구정이 돈과 권력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압구(狎鷗)라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지극히 소탈한 뜻이다. 조선조 초기 실력자 한명회(韓明會 1415-1487)가 한강변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갈매기와 벗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중국의 사신을 초대하는 등 이름에 맞지 않은 실권을 행사하였다고 한다.

본래 압구정은 송나라의 명재상 한기(韓琦 1008-1075)가 은퇴 후 갈매기와 벗하고저 지은 정자였다. 원조 압구정은 양자강변에 있었다고 한다. 악양루기(岳陽樓記)로 유명한 범중엄(范仲淹)의 친구인 한기(韓琦)는 한명회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일본 동경에도 압구정이라는 별장이 있었다. 동경의 옛이름인 에도(江戶)시대의 장군가의 세력가가 권력에서 은퇴하여 조용히 살고저 바다와 강이 만나는 매립지에 지은 별장이다. 명치유신 후 장군가의 재산은 일본왕실에서 접수하게 되자 에도의 압구정은 일본 왕실의 바닷가 별궁이 되어 영빈관으로도 활용되었다. 당시 명치천황이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그란트 장군을 여기에서 만났다. 지금은 동경의 시민공원이 된 하마리큐(濱離宮)정원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의심이 많았다. 그가 일본을 통일했지만 실력가인 도꾸가와 이예야스(德川家康)에 대한 불안은 떨칠 수 없었다. 도꾸가와는 나고야 근처의 비옥한 지역을 영지로 하고 있었다. 도요토미는 천하가 평정되자 황무지나 다름없는 에도를 도꾸가와에게 주어 칼을 녹여 괭이를 만들어 개척하도록 하였다. 농군이 된 덕천가(德川家)가 더 이상 풍신가(豊臣家)의 위협이 될 수 없도록 한 계략이었다.

그러나 풍신(豊臣)이 죽자 도광양회의 힘을 기른 도꾸가와는 내전에서 승리하여 최고 권력자 쇼군(將軍)이 되고 황무지로 버림 받았던 에도는 일본 열도의 중심이 되었다. 쇼군가(將軍家) 권력자들은 바다를 메워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 바다의 간만의 조수(潮水)를 이용하여 호수를 만들고 갈매기들이 날라 들어오게 하였다. 에도의 스미다(隅田) 강변의 장군가의 가장 큰 별장에 압구정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이것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하마리큐 시민공원으로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 동양 3국에서 압구정의 모습이 유일하게 이곳에 남아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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