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현장 추모 연못엔 희생자 2983명 이름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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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를 ‘7 월드트레이드센터(WTC)’ 48층에서 바라본 모습. 이곳엔 2016년까지 4개 건물과 기념관·박물관 등의 복합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인공 연못 2곳을 테러 10주년을 맞는 다음 달 11일 개장한다. [뉴욕 로이터=뉴시스]

래리 실버스타인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결국 우린 해냈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9·11 테러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를 내려다보는 래리 실버스타인(Larry Silverstein·80)은 감회에 젖었다. 실버스타인부동산 회장인 그는 그라운드 제로 재건사업을 맡고 있다. 뉴욕·뉴저지 항만청이 소유한 옛 월드트레이드센터(WTC) 부지엔 4개 건물과 기념관·박물관·추모공원·교통환승센터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가 들어선다. 그는 “그라운드 제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원 월드트레이드센터(1 WTC·옛 프리덤타워)’가 내년 완공된다”며 “2016년이면 모든 복구공사가 마무리돼 WTC는 맨해튼 다운타운의 새 명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미 국무부 산하 외신기자협회(FPC)가 주관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실버스타인의 도전은 2001년 7월 24일 시작됐다. 애초 그는 뉴욕·뉴저지 항만청이 내놓은 WTC 건물 7개 동 리스 입찰에서 떨어졌으나 낙찰자가 계약을 포기하는 바람에 리스 계약을 따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6주 뒤 알카에다의 테러 공격으로 WTC 7개 건물이 모두 무너졌다. 망연자실했던 그는 이내 다시 일어났다.

곧바로 보험사와 뉴욕·뉴저지 항만청을 상대로 한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6년에 걸친 밀고 당기기 끝에 그는 2007년 보험사로부터 45억5000만 달러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정부와의 줄다리기는 더 어려웠다. 테러 공포에 질린 당국은 화재와 충격에 대한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3000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테러 현장에 들어설 건물에 누가 입주하겠느냐며 핀잔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국과 밀고 당기기 끝에 그라운드 제로의 랜드마크가 될 ‘1 WTC(One WTC)’ 건물 소유권을 뉴욕·뉴저지 항망청에 주는 조건으로 2006년 가까스로 합의가 이뤄졌다. 그 뒤에도 자금 부족과 노조와의 갈등으로 공사는 수차례 중단됐다. 새로 부임하는 뉴욕과 뉴저지 주지사의 입맛에 따라 디자인도 여러 번 변경해야 했다. 반신반의하던 월가와 당국의 태도는 2006년 그라운드 제로 바로 곁에 ‘7 WTC(Seven WTC)’ 건물을 준공하면서 달라졌다. 텅텅 빌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임대율이 92%에 달하자 부동산업계도 그라운드 제로 부동산시장을 다시 보게 됐다. 그러면서 자금의 숨통이 트였다.

 이날 찾은 공사현장에선 9·11 10주년 기념식에 대비한 단장이 한창이었다. 올해 기념식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물론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전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다. 아직 4개 동의 건물은 공사 중이지만 올해 10주년 행사에선 옛 WTC 건물터에 만든 인공 연못 2곳을 개장한다. 각각 4046㎡(1에이커)의 이 연못의 가운데는 움푹 파여 있다. 연못 가장자리에서 폭포처럼 떨어진 물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연못을 디자인한 마이클 아라드는 “9·11로 희생된 사람들에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흘리는 영원한 눈물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연못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설치된다.

 4년째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루이스 저스트리(여)는 “9·11 당시 구조대원으로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26년간 소방대원으로 일한 그는 4년 전 은퇴한 뒤 그라운드 제로 재건에 참여하고자 인부로 취업했다. 저스트리는 “그라운드 제로 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공사가 한창인 ‘1 WTC’ 건물 벽엔 희생자의 이름이 빼곡히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위엔 ‘영원히 잊지 않겠다(Never forget)’는 푯말이 선명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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