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편지] BBC,뉴욕타임스가 주목하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날씨가 아주 좋다. 살짝 추운기운이 없지 않지만 해가 쨍쨍하다. 오늘 첫 공연이다. 들뜬 마음으로 소품을 챙기고, 의상을 입으며 분장을 했다. '오늘이 그 날이구나'라는 생각에 설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상하게 우리는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하고 가발을 쓰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다. 공연시간은 오후 3시15분이지만, 우리는 11시부터 나가 홍보를 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시작은 5일이다. 하지만 3일부터 공연을 하는 팀들이 꽤 많은 편이다. 페스티벌이 시작되면 예매해서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냥 로얄마일로 와서 공연홍보하는 것을 보고 감상할 공연을 정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열심히 홍보를 해야 했다. 이미 로얄마일에는 많은 팀들이 나와서 홍보를 하고 있었다. 길거리 공연자들도 많았다. 곳곳에 포스터들이 붙어 있고,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홍보를 하는데 다른 팀들의 시선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러 친구들이 우리에게 얘기를 건넸다. " 처음에는 너네 미국애들인줄 알았다." " 정말로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같이 옆에서 홍보를 못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데서 해야겠다" 라는 식이다. 우리는 그냥 한국식으로 홍보를 했는데 그 친구들에겐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나보다. 올해는 거의 대부분 우리가 모르는 팀이다. 하지만 몇몇 외국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나 당신네 공연 작년에 봤어. 정말로 재미있게 봤어"라고 말했다. 뿌듯하다. 아직까지 기억을 하다니.

홍보를 시작한지 10분만에 상황은 종료됐다. ㅋㅋ 모든 팀들이 자기 공연을 홍보하기는 커녕 우리와 사진을 찍고 우리를 보면서 웃는다. 우리 주위에 3팀이 홍보하고 있었는데 10분이 지나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ㅋㅋ 하긴 내가 다른팀이라도 우리를 이기기는 좀 힘들 것 같다. 우리처럼 익살스럽게 홍보를 하는 팀이 거의 없어서다.

우리는 K-POP을 틀어놓고 동대문 시장에서처럼 큰 소리로 우리 공연을 보러오라고 한다. 우리나라 분들은 어떤 상황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고, 플라이어는 1시간만에 동났다.

어느새 오후 2시다. 공연장으로 갈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화이팅을 외치고 공연장에 발을 들였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되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다들 장난 삼아 말을 꺼냈다. "오늘 몇 명 올 것 같애?" "글쎄, 20명? 많아야 40명?" 맞는 말이다. 매니저분과 외국 스텝들도 그런 얘기를 했다. "아직 페스티벌이 시작되지 않은데다 오늘은 평일이고, 첫 공연이기에 많이 오진 않을꺼야" 라고….

"관객 입장합니다." 우리는 입장하는 걸 볼수 없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다. "은근히 관객있는 것 같은데?" 그러다 좀 지나서 무전기로 스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많은데…계속 들어와."

공연이 시작됐다. 수원이가 먼저 나갔다. 항상 수원이가 먼저 나가서 일명 바람이라는 걸 잡고 경선·준우가 합류해 춤을 추며 시작한다. 그런데 수원이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간에 내가 나갔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20~30명을 생각했는데, 관객이 꽤 많았다. 대충 60명이 넘는 듯 했다. 좌석의 반이 관객으로 차 있었다. 페스티벌 시작 전에 이 정도면 말그대로 '대박이다'. 모든 공연을 마치고 마지막 엔딩 노래가 나오자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갑자기 울컥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면서 무대 중앙에 있는 태극기를 가리켰다.

관객들이 퇴장할 때 우리는 뒤로 돌아나가 관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모든 외국인들이 또다시 박수를 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외국 스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외국 스텝들은 입소문을 내준다. 한 외국 스텝이 "정말로 대단하다. 첫 날 공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도 몰랐고, 다른 스텝들도 지나가면서 너희 공연을 보려고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무슨 공연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냐?라고 묻더라"라고 말했다. 그래, 대박이다. 가난하고 굶주렸지만, 우리의 눈물과 열정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에게 손으로 안내한 태극기가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

숙소로 돌아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C venue 공연장에 유력 언론의 기자단들을 모셔놓고 쇼케이스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쇼케이스에 초청을 받았다는 전화였다. "어느 매체에서 오느냐"고 물었는데 듣고 나서 깜짝 놀랐다. "BBC, ITV, NEWYORK TIMES, SCOTMAN, SCOTISH TV'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매체들이었다. 더 기분이 좋은 것은 C venue에서 하는 총 270개 공연중에 우리가 TOP 12에 뽑혀서 쇼케이스에 간다는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는 코미디쪽의 대표로 나가는 듯 하다. 그리고 아시아인들은 우리 뿐이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아니 최고였다. 정말이지 다들 날아갈 듯 했다.

다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에게 팀원들이 말을 했다. "중앙일보에 쓸 얘기 많아서 좋겠다~ㅋㅋㅋ" 좋긴 너무 좋았다. 빨리 중앙일보에 보내고 싶고, 한국에 알리고 싶었다. 많은 한국에 계신 분들. 우리를 응원해주시고 우리를 좋아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왠지 모르게 내가 글을 쓰면서도 글에서 기분좋음이 느껴지는것 같다. ^^ 에든버러의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워보이기는 처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