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인재 옷 벗기는 검찰 기수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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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열린 차동민 서울고검장 퇴임식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왼쪽)가 퇴임사를 마친 차 고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13기 동기로 총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 [연합뉴스]


“50대 초·중반인 분들이 후배들을 위해 용퇴한다는 게 국민 눈에는 이상하게 비칠 것이다. 이제 누군가는 관행을 바꿀 때가 됐는데….”

황교안 부산고검장(左), 조근호 법무연수원장(右)

 2일 차동민(52) 서울고검장, 황교안(54) 부산고검장, 조근호(52) 법무연수원장 등 세 명이 퇴임식을 했다. 한상대(52) 검찰총장 후보자와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인 이들은 “한 후보자의 지휘권에 부담을 주지 않고 후배들의 앞길을 터주겠다”며 검찰을 떠났다.

 이날 법조계 인사들은 이른바 ‘기수(期數) 문화’에 따라 동기가 검찰총장이 되면 집단 사퇴하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는 데 대해 “검찰 내부의 폐쇄적 문화에 매몰돼 국민은 안중에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나타냈다. 연수원 13기 동기 중 가장 연장자인 박용석(56) 대검 차장도 동기들의 사퇴로 수십 년간 쌓은 경륜이 한꺼번에 사장되는 데 대해 강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나는 떠나야 할 사람”이라고 전제한 뒤 “법무차관과 법무연수원장은 검찰총장의 지휘 계통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을 들어 조근호 연수원장과 황희철(54) 차관에게 남아 있으라고 권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차장은 오는 9일 퇴임한다.

 박 차장은 동반 사퇴 관행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고검장급 인재를 키우는 데 드는 국가 예산이 엄청난 데다 법원과 비교해 검찰 조직이 지나치게 연소화되고 있다”며 “조직문화가 아닌 국민의 관점에서 볼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관행을 없애려면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결단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그것만 갖고도 되지 않는다. 후배들 눈치가 더 무섭다”고 했다. 조직 내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검의 한 검사장도 “총장 동기생 중 일부가 조직에 남으면 내부적으로는 승진에 신경 쓸 이유가 없어 직언이 가능하고 대외적으로도 조직의 입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줄사퇴에 이어 조만간 있을 고검장급 인사에서 승진하지 못한 연수원 14기 일부도 옷을 벗게 되면 검찰 조직 연소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총장 자리를 놓고 한 후보자와 막판까지 경합했던 차동민 서울고검장은 이날 퇴임식에서 “지금 검찰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국민이 공감하고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교안 부산고검장은 “검찰의 위기 원인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면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로 수없이 자기 몸을 후려치고 매일 뼛속을 비우는 한 마리 새에게서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근호 법무연수원장은 “불행한 마음으로 쓰는 칼(수사)은 살상용 흉기가 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쓰는 칼은 사회악을 도려내는 수술용 메스가 된다”고 했다.

 ◆‘연수원 300명 시대’ 연 13기=차 고검장 등의 퇴임으로 ‘사시 합격자 300명, 검찰 임관 100명’ 시대를 열었던 13기는 한 후보자를 제외하고 무대 뒤편으로 퇴장하게 됐다. 이들의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1995년 9월 부부장 제도가 처음 도입됐고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인사 때는 대대적인 ‘경향(京鄕) 인사 교류 활성화’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장 많은 검사장 13명, 고검장 6명을 배출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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