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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선거 민심 ‘빅마우스’ 통해 듣는다 - 택시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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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택시기사가 돼 민생 탐방에 나선 본지 박민제 기자(오른쪽)가 지난달 23일 서울 혜화동에서 탑승한 한 승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성 기자]

한 평이 채 안 되는 택시 안은 서민들의 온갖 사연이 쌓이는 곳이다. 본지 탐사팀 기자 3명은 7월 중순부터 일주일간 8명의 택시기사 옆에 앉아 수백 명의 승객을 만나고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의 밑바닥을 훑었다. 치솟는 물가에 지친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민생은 어려운데 정부의 대책은 시원찮다는 반응이 많았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분노와 냉소를 지나 정치에 대한 허탈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치솟는 물가, 쪼들리는 살림살이=“언론에서 말하는 우리나라와 내가 사는 나라가 다른 것 같다.” 7월 하순의 늦은 밤 만난 30대 승객의 하소연이다. “일부 대기업은 잘나가고 나라의 위상은 높아지는 것 같은데 정작 내 삶은 치솟는 물가 탓에 갈수록 어렵다”는 푸념이 이어졌다.

 한 50대 회사원은 “자식 둘 등록금으로 한 학기에 1000만원이 들어간다. 결국 한 아들은 군대 보내기로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름값까지 올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승객들의 하소연은 연령대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20대는 취업, 30대는 보육, 40~50대는 대학 등록금 등을 거론했다. 치솟는 물가는 모두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신촌에서 탑승한 여대생은 “졸업반이라 취업이 걱정인데 막상 어렵게 회사에 들어가도 받는 돈에 비해 힘들게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 앞날이 걱정”이라며 “졸업을 미루는 선배들의 심정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늦은 밤 서대문역 인근에서 택시에 오른 30대 회사원은 갓 돌 지난 아들의 보육비와 생활비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50대 사업가는 “4대 강 사업에 돈이 지나치게 쏠리면서 건설업자들만 살아나고 다른 사업자들은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대적 박탈감도 심하다. 김수진(35·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씨는 “나라는 경제대국이 돼 가는데 정작 시민들은 이걸 체험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대책 피부에 안 와 닿아=시민들은 정부의 물가 대책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대 앞에서 피부관리점을 경영한다는 40대 여성은 “물가가 오르면서 생필품이 아닌 피부관리 분야에 돈을 쓰려는 사람이 줄었다”며 “말로만 민생을 외치지 말고 물가 안정이나 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차를 탄 40대 남자 승객은 ‘요즘 어떠시냐’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민생을 아무리 외쳐도 소통을 안 하니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근시안적이거나 비효율적인 행정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출장차 한국을 찾았다 택시를 탄 커먼펀드의 리농 리 매니저는 “한국의 반값 등록금은 근시안적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당장은 좋겠지만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대기업 회사원(35)은 “공무원이 경영 마인드가 없고 무사안일하다”며 “이것이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정치하는 분들, 대화 좀 합시다”=시민들이 원한 것은 소통이었다. 무역업을 하는 송정수씨는 “현 정부가 UAE 원전 수주, G20 개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등 잘한 것도 많다”면서도 “내치는 실패했다는 느낌이다. 좋은 정책을 해도 그걸 제대로 시민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그냥 추진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건설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40대 승객은 내년 총선·대선에서 특별히 지지하는 후보는 없다면서도 “못하면 갈아 치운다는 걸 보여 줘야 하니 무조건 야당을 찍겠다”고 말했다.

 민생과 정치권에 대한 생각은 기사들도 승객과 다르지 않았다. 개인택시 기사 전규학(58)씨는 “비리나 부정 축재 얘기가 나오면 손님들은 하루 종일 그 얘기만 한다. 손님이나 기사나 몇백원, 몇천원 아끼려고 애쓰는데 억대 비리를 접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탐사기획부문=이승녕·고성표·박민제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이서준(연세대 정치외교학과)·최누리(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인턴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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