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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컴퓨터 쓰는 세상을 향해…

중앙일보

입력

"해커 정신을 망각한 해커가 활개치고 있어 안타깝다.”

10년 정도의 해킹 경력 소유자로 현재 전산망 보안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K씨는 정통 해커의 윤리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K씨가 말하는 해커의 윤리란 20세기 중반 지구촌에 신인류로 등장한 해커가 MIT대학에서 등장한 이후 이들에 의해 정립된 몇 가지 행동강령이다.

가령 “컴퓨터 접속시 완전한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모든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컴퓨터로 예술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컴퓨터는 우리의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 등등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해킹사건에서는 이같은 윤리를 찾아볼 수 없다. 아름다움과 예술을 지향해 온 정통 해커들의 성향과 달리 민·형사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치기어린 크래커(악의적인 해커)들의 행동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렇다면 정통 해커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자신의 컴퓨터 기술을 정보기술의 변혁과정에서 어떻게 활용했는가.

컴퓨터 발명 초기에 등장한 해커들은 컴퓨터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에 삶의 무게를 실었다. 기득권층이 향유하는 컴퓨터 문명의 과실을 대중에게 안겨 주고 권력 유지나 인명살상 도구로부터 컴퓨터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청년문화가 그랬듯 20세기 중반에 수면 위로 부상한 1세대 해커는 학문의 전당으로 여겨지는 교육기관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났다. 그들은 대형컴퓨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時)분할이라는 기술을 이용, 가상의 개인용 컴퓨터로 바꿨다.

이어 70년대 말의 2세대는 반(反)문화 운동의 새로운 기수를 자처했다. 히피 생활을 즐겼던 스티브 잡스와 휴렛팩커드의 엔지니어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어낸 개인용 컴퓨터는 그 단적인 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전산실에 은둔(?)해 있던 컴퓨터를 가정과 사무실로 끌어낸 것이다. 권위에 대한 도전의 결과였다.

다음의 3세대는 80년대 초 소프트웨어 해커를 일컫는다. 그들은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응용프로그램과 교육용·오락용 프로그램을 만들며 일반 대중들이 컴퓨터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쏟았다. 4세대는 분산돼 있던 컴퓨터 네트워크를 묶고 이들간의 연대를 시도했다.

그들은 해커의 윤리에 기초해 수많은 전자게시판을 만들고 인터넷에 유즈넷이라는 게시판을 탄생시켰다. 동시에 그들은 미 국방성의 원조에 힘입어 오늘날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을 만들어 낸 주역들이다. 8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처럼 이 세대는 네트워크가 지구촌을 변혁시킬 것으로 믿은 집단들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의 가르침대로 프리웨어나 세어웨어 등의 형태로 프로그램을 개발, 일반인에게 배포했다.

이러한 세대간의 구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끊임없는 탐구와 열정으로 컴퓨터를 인류의 유용한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다시 말해 이러한 전통적인 윤리를 고수하며 활동해 온,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해커들에게서 존경받고 있는 해커들을 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개인용 컴퓨터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의 리 펠젠스타인(Lee Felsenstein)은 해커세계에서 신화적 인물중 한명이다. 그는 중앙집권적인 정보시스템의 타파와 이를 통한 사회개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사회 각계 각층의 해커들로 구성된 홈브루컴퓨팅클럽을 설립, 가장 초기의 개인용 컴퓨터중 하나인 솔(Sol)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인 오스본을 만들었다.

MIT대에서 해커로 독보적인 명성을 날렸던 리처드 그린블러트는 해커의 발원지인 MIT대학 내 테크모델 철도클럽 회원들과 만나면서 해킹에 빠져들게 된다. 컴퓨터의 기계어를 포트란(Portran)으로 변화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 그는 대학을 중퇴한 후 하나의 중앙컴퓨터를 여러 사람이 나눠 쓸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했다. 시분할 체계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는 또 리처드 스톨만이 그랬던 것처럼 패스워드 없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해커의 윤리를 몸소 실천했다.

그린블러트와 함께 시스템 해커로 이름을 떨친 사람으로 빌 고스퍼(Bill Gosper)를 빼놓을 수 없다. 수학자 콘 웨이에 의해 창안된 ‘생명 게임(life game)’을 계기로 해킹에 빠진 고스퍼는 “생명게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또 다른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며 원리규명에 뛰어들었다. 그린블러트와 고스퍼는 60년대 해킹의 양대산맥을 형성하며 두 가지 유형의 해킹을 후일의 해커들에게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린블러트는 실용적인 프로그램 작성에 관심을 가졌고, 고스퍼는 수학적 탐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그린블러트는 시스템의 해커였는데 반해 고스퍼가 형이상학적인 연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해커문화와 윤리를 가장 찬란하게 피운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그들은 해킹 이외에는 관심을 쏟지 않았으며, 오로지 해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인생을 건 사람처럼 비춰졌다. GNU(프리 소프트웨어재단에서 만든 유닉스 운영체계용 프로그램)를 만든 리처드 스톨만은 어느 누구보다 완벽한 해커로서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노력했다. 관료주의와 비밀주의를 거부했던 스톨만은 모든 정보를 자유롭게 유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형컴퓨터의 운영체계인 유닉스는 고가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지만 GNU는 유닉스의 장점을 발휘하면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최근 컴퓨터 이용자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리눅스는 이러한 GNU의 정신이 이어진 것이다.

해커로서 스톨만의 또다른 행동은 패스워드(비밀번호) 철폐운동이다. 컴퓨터가 네트워크에 연결되기 시작하는 70년대부터 등장한 비밀번호를 거부하는 싸움에도 치열하게 뛰어들었다. 사실 비밀번호는 연구소 등에서 컴퓨터 사용을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한정시키려는 시도에서 나타난 제도였다. 당연히 자원의 공유가 최대의 관심사였던 해커들에게는 비밀번호란 권위주의의 산물일 수밖에 없었다.

펠젠스타인과 마찬가지로 스톨만 역시 비밀번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스톨만은 컴퓨터에 접근할 때 컴퓨터가 패스워드를 요구하면 리턴키를 누르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었다. “컴퓨터를 대학이나 기업체 연구실에서 해방시킨다”는 해커의 윤리에 기초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스톨만의 정신을 지원하기 위해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 Free Software Foundation)이 발족됐다.

이 재단은 컴퓨터프로그램의 사용과 복사,수정과 재분배에 대한 권리제거에 깊은 관심을 쏟아 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프로그램의 공개와 자유로운 사용권 확보에 저작권이 현실적인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정보공개를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체계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이른바 카피라이트(Copyright, 저작권)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카피레프트(copyleft, 反저작권)운동이 그것이다.

이들은 FSF에 이익의 일부분을 성금으로 기탁하는 회사들의 명단을 공개, 그 회사의 프리 소프트웨어 배포권을 구입하는 방식을 권하고 있다.

김강호 정보통신평론가·(주)사이젠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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