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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아저씨는 모두 뻔뻔하다?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외국인이라도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특히 한국적인 정서를 잘 나타내는 말들이 그렇다.

그중에 한 예가 ‘아줌마’와 ‘아저씨’다. 사전에는 중년 여성과 남성이라고 나와 있지만 누구나 알듯이 이야기의 정황에 따라 다른 의미가 추가되는 단어들이다. 내가 가르치는 한국인 여대생이 어느 날 상기된 얼굴로 씩씩거리며 수업에 들어왔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녀는 “아줌마”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의 얼굴 표정과 억양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우리 모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으니까. 많은 외국인의 머릿속에도 그런 고정관념이 박혀 있다. 줄을 섰을 때나 백화점, 혹은 주점가 등에서 겪는 아줌마 또는 아저씨와 관련된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 말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야깃거리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나에게도 그런 경험담이 있다. 내가 탄 지하철이 어느 역에 정차했을 때의 일이다. 문이 닫힐 때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누군가 닫히는 문에 걸려 넘어졌다. 얼핏 비틀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필경 어떤 몰상식한 아줌마가 문이 닫힐 때 지하철 안으로 뛰어들다가 넘어진 걸 거야.” 한국인이나 외국인 모두 그런 낯 두꺼운 인간형을 잘 안다. 나는 “조금 빨리 가려고 무리하게 지하철을 타려다가 걸려 넘어졌다면 그렇게 망신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다.

고소하게 여기며 그리고 어쩌면 그 뻔뻔한 아줌마의 망신을 지켜보며 조금은 야비한 만족감을 얻으려고 몸을 돌려 살펴봤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던 그런 장면이 아니었다. 세 명이 부축해 일으켜 세운 사람은 허리가 물음표처럼 굽은 작고 여윈 백발의 할머니였다. 너무 노쇠해 세 사람이 부축하는데도 다리가 불안정해 보였다. 할머니는 한쪽 다리를 절었다. 내 상상과는 달리 그 할머니가 지하철을 잡으려고 달렸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느리고 불안정한 걸음걸이 탓에 지하철 문이 닫힐 때 발이 걸려 넘어진 듯했다.


곧바로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상상해 넘어져도 싸다고 판단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부축해 지하철 끝의 노약자 석으로 인도했다.
내 태도를 돌이켜 생각해 봤다.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기는 쉽다. 도로에서 앞으로 끼어드는 자동차 운전자의 이름이 뭔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더 많은 서류를 요구하며 까다롭게 구는 공무원의 가족상황을 나는 모른다. 거리에서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주정뱅이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들을 모르기 때문에 일말의 연민도 없이 그들과 관련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 쉽다.

많은 외국인은 언어 장벽 때문에 주변의 한국인들과 인간적인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다. 인간적 교류를 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다. 교류가 없으면 인간적인 동정심을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상대방을 악인 또는 희생양으로 만들어 내 경우처럼 그들이 인간임을 잊기 쉬워진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나뿐 아니라 상대방도 그런 편견을 갖는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한국의 외국인들도 모든 아줌마가 그렇게 철면피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대부분 친절하고 따뜻하고 상냥하고 착하고 재미있는 중년 한국인을 만났던 즐겁고 아름다운 경험이 있다.

알고 보면 여행을 갔다가 또는 수업 중 아니면 행사장에서 착하고 친절한 외국인을 만나 인간적인 교류를 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 때문에 그런 교류가 쉽지는 않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최악의 아줌마 이미지로 내가 만나는 모든 아줌마를 재단하는 건 불공평하다(그날 지하철에서 내가 그랬듯이).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한국의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사는 모든 외국인을 TV에서 본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에 비춰 재단하는 일도 불공평하다.

어느 한쪽이 더 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안타깝게도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모두 그런 편견을 보인다. 어쨌든 그건 핵심이 아니다. 내 생각을 바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인간적 측면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매일 노력한다. 내가 사는 서울이 이방인의 도시가 아니라 인간들의 도시로 다가오도록 말이다.

[캐나다 출신인 필자는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그동안 영어를 가르치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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