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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축구판의 ‘귀족’ … 지휘봉 잡자마자 스타 군단 평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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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호 20면

비야스 보아스(사진)는 지난 시즌 FC 포르투 감독 취임 첫해에 포르투갈리그·포르투갈 FA컵·수퍼컵,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프로선수 경력 없이 혜성처럼 등장해 프로 감독 2년 만에 선보인 탁월한 지도력만으로도 그는 돋보인다. 하지만 그의 특별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귀족 가문의 자제로 유명하다. 축구는 노동자 계층을 대표하는 스포츠였다. 상류층 출신 선수나 감독은 드물다.

34세 첼시 감독 비야스 보아스, 잉글랜드 축구 바꿀까

그의 고조부 조제 조아킴은 대법원 판사와 브라가 시장을 역임하고 남작 작위를 받았다. 증조부 조제 제라드도는 자작, 증조부의 형제 알프레도는 건설부 장관 출신이자 공작이었다.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리스본공대 화공과 교수인 아버지 루이스 펠리페와 포르투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어머니 테레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포르투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학교를 다녔다.

그의 할아버지 곤살로는 영국인 마거릿 네빌 켄덜과 결혼했다. 켄덜은 포르투와인 사업을 위해 4대째 포르투에 살던 상류층이었다.

포르투와인과 영국의 인연은 깊다. 영국 왕실은 1152년 프랑스 와인의 명산 보르도 지역을 차지했다. 하지만 1475년 백년전쟁에 패하면서 영국은 프랑스 지역 영토를 모두 잃게 됐다. 안정적인 와인 공급처를 상실한 영국이 개척한 곳이 포르투다. 하지만 멀어진 운반 거리가 문제였다. 영국에 도착한 와인은 대부분 상해 마실 수 없었다. 결국 발효과정에서 독한 브랜디를 넣어 도수를 높였고 이게 효모의 활성화를 막으면서 문제는 해결됐다.

비야스 보아스는 영어에 능통하고 크리켓·폴로·테니스를 배웠지만 관심은 축구에 쏠려 있었다. 1994년 노감독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영국의 명장 보비 롭슨 경(1933~2009)이 그해 FC포르투 감독으로 부임했다. 롭슨 감독은 비야스 보아스가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 현관에서 롭슨과 우연히 만난 소년 비야스 보아스는 다짜고짜 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기용하지 않느냐며 따졌다. 그리고 FC 포르투의 전술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롭슨 감독은 소년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리포트를 써서 내 우편함에 넣어놓으라”고 했다.

이후 소년은 롭슨을 따라 FC포르투의 훈련을 참관했고 코칭스태프 회의에도 동석했다. 롭슨의 도움으로 잉글랜드 1부리그 입스위치의 훈련장도 드나들며 선진 축구를 견학했다. 롭슨 감독은 스코틀랜드축구협회에 ‘압력’을 넣어 비야스 보아스가 지도자 연수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왔다. 스포츠 저널리스트를 꿈꿨던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축구계에 뛰어들었다.

유럽축구 신세대 감독의 대명사는 조제 모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었다. 2003년 마흔 살에 FC포르투를 UEFA컵(유로파리그의 전신) 우승으로 이끈 그는 이듬해 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했다. 2004년 첼시를 시작으로 2008년 인터 밀란(이탈리아)을 거쳐 지난해부터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를 이끌고 있다. 비야스 보아스는 모리뉴 사단의 핵심이었다. 모리뉴가 롭슨 감독의 통역일 때 인연을 맺었다. 롭슨의 후광을 업고 18세 때부터 FC 포르투 유소년팀 코치로 일한 그는 모리뉴 감독 시절 전력분석관을 맡았다. 모리뉴 감독은 “안드레는 나의 눈이자 귀”라며 그를 신임했다. 비야스 보아스의 상대팀 전력 분석은 정확하면서도 명쾌했다. 모리뉴 감독은 팀을 옮길 때마다 비야스 보아스를 데리고 다녔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230억원의 위약금을 FC 포르투에 주고 비야스-보아스를 데려온 것도 첼시 코치 시절 그의 능력을 검증했기 때문이었다. 비야스 보아스는 인터 밀란 코치로 일하던 2009년 독립을 선언했다.

2009년 비야스 보아스가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프로팀 아카데미카 데 코임브라의 수비수 페드리뉴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선수가 있었지만 항상 친구처럼 지냈다.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수술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문자를 보내고 병문안을 온 사람이 감독님이었다”고 회상했다.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리틀 모리뉴’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첼시 부임 기자회견에서 “나는 팀 전체를 중시한다(I am the group one)”고 밝혔다. 모리뉴의 별명 ‘특별한 존재(a special one)’와 차별을 두기 위해서다. 모리뉴는 2004년 첼시 취임 기자회견에서 “(유럽 정상에 오른)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선언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대립할 생각이 없다. 나는 그분을 존경한다”고 했다. ‘독설가’ 모리뉴와는 다른 노선이다.

첼시는 21일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태국과 홍콩을 거치는 아시아 투어를 시작했다. 주전급 29명을 데리고 간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선수 전원을 경기에 투입해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잠잠했던 내부 경쟁이 점화되면서 팀에 생기가 넘친다. 페르난도 토레스를 비롯해 디디에 드로그바 등 주공격수들의 이적설도 잠잠해졌다.

백전노장 퍼거슨 감독의 심경은 기대와 우려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는 19일 “비야스 보아스 감독이 부임한 첼시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다. 나도 서른두 살 때 감독을 맡았지만 스코틀랜드 2부리그였다. 사실 나는 혼자서 몸으로 때웠다. 지금 비야스 보아스 감독 옆에는 훌륭한 조력자가 많다. 선수들도 뛰어나다. 첼시가 다시 한번 도전적으로 나서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맨유와 첼시는 만날 때마다 으르렁댔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노동자 집안 출신 퍼거슨 감독과 귀족의 피가 흐르는 댄디 가이 비야스 보아스 감독의 대결은 새로운 흥밋거리다. 비야스 보아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내 코는 크다. 빨강 머리에 와인을 좋아한다. 그러니 영국의 유산을 많이 물려받았다”는 농담을 했다. 영국과 포르투갈의 유산을 고루 물려받은 비야스 보아스 감독이 포르투와인의 강렬한 단맛을 낼지, 알싸한 브랜디 맛을 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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