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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보러가요

중앙일보

입력

물방울 무늬 땡땡이 바지에 배꼽 티, 콧수염을 붙이고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어릿광대가 무대에서 재주를 넘는다. 갑자기 무대 아래로 뛰어내려서는 객석으로 뛰어가 앞줄에 앉은 관객과 손바닥을 마주쳐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리곤 구경꾼 할아버지 앞에 엉덩이를 불쑥 들이밀더니 '푸시식' 소리와 함께 꽁무니에서 하얀 분가루를 뿜는다.

"예끼, 이놈" 하는 호통은 간데 없고 배꼽을 잡고 웃는다. 하긴 서커스 구경와서 광대의 익살에 화를 낼 사람이 어디 있을까.그래도 광대는 부리나케 무대 뒤로 도망치고, 또 다른 묘기를 소개하는 아나운서의 소리가 장내를 채운다.

"70년 전통 동춘 서커스단 최고의 묘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공중 그네타기가 이어집니다. 박수 주세요. "

동춘 서커스단(02-6383-9141) 의 수도권 공연이 한창이다. 겨우내 남도를 돌다 봄을 맞아 서울로 올라와 지하철 7호선 상봉역 앞 빈터에 서커스 천막을 쳤다.

19일까지 이곳에 머물고, 오는 23~29일은 광명 시민회관에서, 4월 1~29일에는 경기도 고양시의 지하철 3호선 화정역 앞 광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2시간 남짓한 공연은 6m 높이에 걸쳐진 외줄타기.외발 자전거.강아지들의 재주부리기 등 20여가지 묘기로 채워진다.

가로.세로.높이 40~50㎝의 유리상자 속에 여자 어른이 팔.다리를 접고 들어가기도 한다. 이를 본 김가람(서울 면동초등2) 양의 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구겨져요. "

우리나라에는 서커스단이 3개 있으나 수도권에 진출하는 것은 동춘 뿐. 1928년에 세워졌으니 동춘 서커스단은 고희(古稀) 를 넘겼다.

박세환(58) 동춘 서커스단장은 "60년대만 해도 동춘은 연예인들의 등용문이었다" 고 말한다.

코미디언 서영춘. 남철. 남성남 등과 황해. 백설희. 이봉조 등도 이곳을 거쳐갔다는 것. 당시는 서커스뿐 아니라 연극.쇼 공연까지 함께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쇠퇴해 78년 문을 닫을 위기에 몰렸으나 62년부터 단원으로 활동하다 나가 사업을 하던 박단장이 인수해 지금에 이르렀다.

80년대 후반부터는 꽤 관객도 몰리지만 곡예사 처우 개선이 우선이어서 아직 시설 투자는 미흡하다.

바람이 불면 천막이 들썩거려 안으로 햇빛이 비치고, 무대 시설도 TV에서 보던 외국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천막과 맞춤법이 틀린 선전 문구가 초라해 보이기보다는 정겨움을 더한다.

요즘 동춘의 20여가지 공연에는 7~8명 곡예사들이 겹치기 출연을 한다. 겨울 비수기를 맞아 놀이공원.호텔 등으로 흩어졌던 20여 단원들이 아직 모이지 않았기 때문.

흩어진 가족은 4월이면 함께 모인다. 그날을 기다림인지, 공연 뒤 장내를 정리하던 한 단원들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평일.토요일 공연은 오후 2시.5시.8시. 일요일은 오전 11시 공연이 추가된다. 어른 7천5백원, 어린이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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