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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63) 고은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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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성일·고은아 주연의 영화 ‘소문난 여자’(1965). 고은아는 60년대 중반부터 청순가련한 이미지로 뭇 남성을 사로잡았다. 다른 여배우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매력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윤정희·문희·남정임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 속에서도 청순 가련한 매력으로 자기 영역을 확고히 했던 여배우가 있었다. 고은아(본명 이경희)다. 그녀는 65년 6월 개봉한 ‘란의 비가’로 데뷔했다. 상대역은 나였다. 극동흥업은 그해 김기덕 감독의 히트작 ‘남과 북’에 이어 ‘란의 비가’를 기획하면서 암에 걸린 청순한 소녀를 공모로 뽑았다. 바로 홍익대 공예과 출신의 고은아다.

 ‘남과 북’은 문주란이 부른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주제가로 더 유명했다. 이후 패티김의 목소리로 KBS ‘이산가족 찾기’ 배경음악으로도 쓰였다. ‘남과 북’ 여주인공(엄앵란) 이름이 ‘고은아’였다. 극동흥업 측이 그 이름을 딴 것이다.

 고은아는 비교적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로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문예영화 풍의 멜로드라마에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란의 비가’에 이어 대표작인 ‘갯마을’(65년)에선 총각에게 유혹을 당해 도망가는 해녀 해순 역으로 남자들을 녹였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갯마을’의 고은아를 ‘해풍에 흐느적거리는 야생화 같은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고은아는 너무나 착했다. 좋은 집안 출신으로 집은 중랑교 방향의 휘경동이었다. 그녀는 ‘란의 비가’를 찍으며 나와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부산여고 시절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 한다. 고3 어느 날 책갈피에 끼워둔 신성일 브로마이드를 보고 있다가 선생님께 들켰고, 그 자리에서 야단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티없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어쩌다가 선생님과 함께 출연하게 되었을까요?”

 고은아는 스크린에선 드러나지 않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긴 팔에 털이 많았고, 매운 것을 좋아했다. 부산 사람이라 그런지, 음식을 아주 맵게 해 먹었다. 내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촬영 중 고은아를 놓고 장난을 친 적이 있다. 66년 한여름 인천 월미도에서 고은아와 함께 이형표 감독의 ‘소문난 여자’를 찍었다. 곽정환 합동영화사 사장이 고은아에게 넋이 빠졌고, 그가 일방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이 차는 15살. 곽 사장은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여주인공에 대한 그의 관심과 배려가 눈에 띌 정도였다. 곽 사장을 골려 주기로 마음먹은 나는 포옹하는 장면에서 감독의 ‘컷’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꼭 껴안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곽 사장이 고함쳤다.

 “미스터 신, 풀어. 풀라고.”

 나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했다. 곽 사장은 끈질긴 구애 끝에 67년 고은아와 결혼했다.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고은아의 가족들이 곽 사장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는 며칠, 몇 번인가 고은아의 집을 찾아가 무릎 꿇고 그녀를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고은아는 77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끝으로 스크린을 떠난 후 신앙 생활에 열중했다. 현재 CBS TV 간판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에서 임동진과 함께 진행을 맡고 있다.

 고은아의 ‘란의 비가’는 불치병 영화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이후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러브스토리’(71년)를 비롯해 ‘선샤인’ ‘라스트 콘서트’ 등 불치병을 소재로 한 외화가 70년대 초 극장가를 휩쓸었다. 지금도 고은아가 매운 것을 즐겨먹는지 궁금하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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