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전 ‘미군 오빠’ 재회한 인순이 “당신 없이 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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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인순이(왼쪽)가 16일(현지시간) 어린 시절 친오빠처럼 따랐던 미군 병사 로널드 루이스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1973년 동두천에서 헤어진 이들은 38년 만에 미국 델라웨어주 월밍턴에 있는 루이스의 집에서 다시 만났다. [월밍턴 AP=연합뉴스]


가수 인순이(54)가 38년 만에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미군 오빠와 재회했다. 동두천 미군 제2보병사단에서 근무하던 로널드 루이스(Ronald Lewis·58)를 수소문 끝에 다시 찾는 데 성공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월밍턴에 위치한 루이스의 집 앞에서 만난 이들은 “이건 기적”이라며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주민들의 축하 속에 인순이는 즉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도 했다고 AP 등 현지 언론은 전했다.

 1972년 그들은 15세 소녀와 19세 미군 병사로 처음 만났다. 루이스는 그녀를 ‘외로움을 많이 타는 소녀’로 기억했다. 흑인 병사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란 이유로 따돌림당하던 인순이가 늘 혼자 밖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동료 병사들과 돈을 모아 옷을 선물하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 루이스는 ‘큰 오빠’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73년 루이스는 인순이를 홀로 두고 떠나는 걸 가슴 아파하며 미국으로 돌아갔다.

 오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지만 백방으로 서로를 찾던 노력은 결국 빛을 발했다. 페이스북과 미군 장성의 도움으로 듀폰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루이스를 다시 찾게 됐다. 미국 콘서트 투어 중 그의 집을 방문한 인순이는 “이제 나도 가수로 성공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인순이가 루이스에게 꽃과 함께 선물한 조각상에는 “당신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Without you, I am nothing)”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인순이의 여동생 킴벌리 히소(Kimberly Hysaw)는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오리 7마리가 새겨진 이 조각상을 두고 “여기 파도 중간에 있는 게 나라면 위에서 나를 끌어주고 있는 것이 바로 루이스”라고 설명했다.

“일년에도 몇 번씩 인순이의 꿈을 꿨다”던 루이스와 “루이스의 눈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던 인순이의 오붓한 만남은 17일 뉴저지주 시코커스에서 열린 콘서트로 이어졌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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