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특허 빅4인데 한국 변리사는 왜 소송 못 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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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 회장

“특허 등 지식재산 제도가 발달한 한국에서 아직도 변리사가 특허 침해 소송을 맡지 못하고 전문 법원도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한국의 변리사회 격인 중화전국전리대리인협회(中華全國專利代理人協會) 양우(楊梧) 회장이 최근 대한변리사회 이상희 회장과 통화하다 깜짝 놀라며 한 말이다. 양 회장은 “한·중·일 특허 출원이 세계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3개국 중 한국만이 특허 관련 사법 제도가 허술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특허권 보호 관련 사법 제도가 ‘짝퉁 천국’ 소리를 듣고 있는 중국에 비해서도 후진적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특허 침해 소송의 경우 변리사 단독으로 맡을 수 있고, 전문 법원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지식재산 전담 재판부를 둬 전문성도 강화했다. 일본도 2003년 법을 개정해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특허 침해 소송을 맡도록 했다. 영국도 변리사와 변호사 공동으로, 미국은 과학기술을 전공한 특허변호사가 주로 소송을 맡는다.

한국은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특허출원을 많이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특허 기술에 전문성이 거의 없는 변호사들만 특허 침해 소송을 맡도록 하고 있다. 특허 침해 소송 때 소송 의뢰인이 원하면 변호사 외에 변리사도 함께 재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7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침해 소송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주자는 변리사법 개정안은 17대 국회 때 처음 제출됐으나 법사위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다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18대 국회에서도 이종혁(한나라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법사위에 상정됐으나 법조인 출신 위원들의 반대 목소리에 막혀 있다. 법사위 소속 법조인 출신 위원 대다수는 “특허법원 관할 소송을 담당하는 변리사에게 굳이 민사소송 절차에서도 대리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도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이종혁 의원은 “세계 각국이 기술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밥그릇 챙기기’를 하는 것은 한말 쇄국정책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밥그릇 싸움으로 볼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후동 변호사는 “변리사법에 규정된 소송대리권을 연혁적으로 보면 특허법에서 규정하는 ‘심결 등에 대한 소송’에 한정한 것이지, 모든 민사소송에서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민사소송은 입증책임, 소송절차 등을 잘 아는 소송 전문가(변호사)가 맡아야 할 영역”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변호사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소송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면 부동산 관련 소송은 공인중개사가, 의료 소송은 의사가 맡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LG특허센터 김정중 상무는 “특허 기술을 거의 모르는 변호사들이 특허침해 소송을 담당함으로써 오는 피해는 법률 소비자인 기업과 개인에게 돌아간다” 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식재산 전쟁을 치르기 위해 발 빠르게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미국은 올 들어 지식재산 권리를 인정해주는 기준 시점을 아이디어를 낸 시점에서 특허청에 출원한 날로 바꿨다. 2008년에는 특허 침해에 대한 민형사상 제재를 강화 하는 지식재산우선화법(PRO-IP법)을 제정했다. 일본은 2003년 특허 침해 소송 전담 법원을 설치하는 등 각종 제도를 뜯어 고쳤다. 중국은 2005년 국가지식재산권전략제정위원회를 설립 했다.

 한국은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해 2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식재산기본법은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설치해 국가 지식재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구상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지식재산의 창출·활용을 촉진하고, 권리 보호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지재권 보호를 위한 관련 법안의 정비·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김승현·이동현 기자

◆변리사(辨理士)=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하거나 관련 법률 업무를 대신해주는 사람. 자격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변호사는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갖는다. 현재 6137명이 특허청에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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