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 정상에 오른 루이나이웨이

중앙일보

입력

이젠 국제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바둑 황제 조훈현(曺薰鉉)
9단을 꺾고 국수에 오른 루이나이웨이(芮乃偉·37)
9단이 밝힌 소박하지만 야심만만한 소망이다. 지난 3일 세계 바둑의 1인자 이창호(李昌鎬)
9단을 다시 제압하기 직전 만난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깡마르고 왜소한 몸집의 중국 출신 여류기사 芮9단은 한국 바둑 정상을 잇따라 무찔러 국내는 물론 국제 바둑계를 연일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10여년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던 여성 기사가 한국의 세계적 바둑 고수를 연달아 제압하리라고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겠는가.

芮9단은 일본 바둑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문하 족보로 치면 사숙뻘인 曺9단에게 국수전에서 승리한 후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曺9단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국수전 3번기를 마치고 나서 당돌하거나 도전적이지 않고 겸손한 모습이었다.

또 지난 3일 李9단과의 TV 바둑에서 이긴 후 “李9단이 실수해 이길 수 있었다”며 듣는 사람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겸손해 했다. 바둑이 동양의 게임임을 다시 증명한 좋은 사례였다.

芮9단의 승리는 물론 우연이 아니다. 17세에 중국 국가대표, 중국 여자바둑 4연패, 1988년 세계 최초 여자 9단 등극, 그리곤 마침내 한국 최고(最古)
기전에서 남자를 물리치고 우승한 최초의 여류기사다.

芮9단의 한국 상륙이 한국 바둑계에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국 바둑이 이젠 직접 외국 기사를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점이다. 우쑹성(吳淞笙)
9단이 한국에 상륙한 첫 외국 기사였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났던 것에 비하면 그녀의 쾌거는 한국 바둑의 국제 경쟁력 제고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다.

둘째, 芮9단의 한국 바둑계 진입은 중국·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내 여자바둑계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한국기원 정동식(鄭東植)
사무총장은 “한국 여류바둑계가 조혜연 2단과 박지은 2단의 등장으로 기력이 거의 남자 수준에 근접한 것도 芮9단이 가져온 결과”로 해석했다. 또 한국에서 여자 프로지망생이 늘어나는 효과도 가져와 “바둑계도 5∼6년 뒤면 여성파워가 거세질 것”이라고 鄭총장은 내다봤다.

芮9단은 한국 여류바둑의 미래를 낙관했다. 그녀는 “일본 바둑계가 20,30년 전만 해도 앞섰지만 이젠 애기가의 노령화와 젊은층의 무관심으로 쇠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바둑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과 기대로 전망이 밝다”고 설명했다.

芮9단은 한국 바둑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정작 그녀의 지난 10여 년간 삶은 집시 생활 못지 않은 ‘잿빛’이었다. 그녀는 천안문(天安門)
사태의 여파로 애인 장주주(江鑄久·39)
9단이 미국으로 피신하자 자신은 89년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芮9단의 실력을 두려워 한 일본기원측은 그녀를 객원기사로 받아주지 않았다.

芮9단은 美 샌프란시스코로 가 있던 江9단과 92년 일본에서 결혼하고 이어 이듬해인 93년부터 96년까지 도쿄에서 생활했다. 이 기간중 그녀는 아마추어 지도대국 등으로 생업을 잇는 한편 우칭위안(吳淸源)
9단·린하이펑(林海峰)
9단 등 거인들과 함께 바둑 연구에 몰두하며 실력을 키웠다.

芮·江 부부는 96년 말 ‘신천지’를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갔지만 ‘고행’은 계속됐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교외 실리콘밸리에서 1백50여 명의 아동들에게 바둑을 지도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芮9단은 이때 보해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 미국 대표 자격으로 참가해 우승하기도 했다.

芮9단에게 또 한번의 전기가 찾아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던 차민수(車敏洙·49)
4단이 그들 부부의 한국행을 주선한 것이다. 한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芮9단은 99년 4월 한국기원 소속 객원기사로 등록할 수 있었다.

남편 江9단과 함께 서울 상왕십리 한국기원(홍익동)
부근 22평 오피스텔에 세들어 살고 있는 芮9단은 아직 한국말이 서투르다. 그러나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싶은 그녀의 소망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중국 국가대표와 미국 국가대표에 이어 세번째로 다시 한국 국가대표를 맡게 되면 芮9단은 본인 스스로가 글로벌 시티즌이 될 뿐 아니라 진정한 한국 바둑의 세계화 달성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강태욱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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