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MIKT가 세계경제 지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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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오닐 골드먼삭스 회장 [블룸버그]


짐 오닐(Jim O’Neill·54) 골드먼삭스자산운용 회장은 2003년 ‘브릭스’(BRIC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세계 경제에서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의 부상을 예견한 전설적인 금융인이다.

그가 최근 중앙일보에 세계 경제를 진단하는 특별 기고문을 보내왔다. 그는 “세계 경제에서 한국 등 신흥시장의 중요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데다 한국의 중앙일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격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오닐 회장은 기고문에서 “브릭스와 ‘성장 시장’ 4개국(MIKT: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이 향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서구권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리스에 집착하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장 시장이 세계 경제의 주요 투자와 기회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고문.

정리=김창규 기자

경제·투자 관련 업계에는 자신에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수정 구슬이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한번도 그런 수정 구슬을 가졌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시장의 컨센서스 전망에 항상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올해 상반기를 되돌아보면, 중동 민주화 운동과 여전히 진행 중인 유로존 위기, 일본 대지진, 세계 경제 둔화, 중국의 세계 2대 경제 대국 부상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 도무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였다.

 금융계에 30년 가까이 몸담은 경험에서 비추어보면 시장 참가자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기를 가장 두려워한다. 하지만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큰 그림을 바탕으로 가치 있는 분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짐 오닐 회장이 중앙일보에 보내온 특별 기고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과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를 포함하는 ‘성장 시장(Growth Economy)’은 필자의 경제 구상에서 변함없이 중추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스트리히트 경제 수렴조건’(1999년 유로화 출범 당시 유로존 가입을 위한 선결조건)을 잣대로 성장 시장과 유로존 국가를 비교하는 작업은 매우 흥미롭다. 유로존에서 현재 이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나라는 단 한 곳, 핀란드뿐이다.

반면 브릭스를 비롯한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 등 성장 시장 국가는 모두 유로존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성장 시장이 서구권과 비교해 재정적으로 보다 건실하고 금융이 안정돼 있다는 현실을 투자자가 인정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다시 한번, 큰 그림을 보자.

 브릭스는 이미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동참했다. 2050년에는 5위권 안에 이들 4개국이 포진할 가능성도 있다. 브릭스는 나머지 성장 시장 4개국(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과 함께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서구권에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리스에 집착하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으로 판단된다. 중국은 올 한 해에만 그리스 경제 규모의 3배를 상회하는 GDP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연수입 증가 폭은 그리스 전체 경제 규모에 육박할 전망이다.

 최근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이 현재 세계 경제가 추진력을 상실한 주요한 원인이다. 또한 이러한 사태로 인한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확대되는 징후도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특히 성장 시장과 이머징 마켓(신흥국 시장)의 긴축 추세를 감안했을 때, 과연 세계 경제가 이러한 단기적인 원인이 제거됐다고 하더라도 (성장 시장 없이) 견조한 회복세를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올 하반기를 전망하면, 중국의 물가상승률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올 들어 중국의 성장세는 한풀 꺾였지만 중국 정부의 정책은 성장이 아닌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뚜렷하게 향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정부의 물가 조정은 물가 통제에 따른 순환주기적인 이점뿐만 아니라 장단기적으로 원자재 시장을 안정시키고 주식시장 전망을 개선시킬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의 경우 미국은 고용시장, 주택·재정 문제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 금융 상황은 상당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대신 물가 상승 압력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이 직면한 보다 구조적인 핵심 문제는 바로 내수다. 미국 내수시장은 예전처럼 미국과 세계 경제의 성장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 경제에서 내수의 중요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 성장 시장에서 미국 수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만일 미국의 수출 성장세가 유지된다면 경상수지 개선을 통해 내수 부진을 부분적으로나마 상쇄하는 상황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봉착한 과제를 고려할 때, 성장 시장이 세계 경제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지금처럼 중시됐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선진국) 내수시장을 편협하게 고수하는 태도에서 탈피하고 세계 경제의 본 모습을 직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계 경제에서 성장 시장이 모든 주요한 투자와 기회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올 하반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까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짐 오닐=2010년 9월부터 회장을 맡았으며 골드먼삭스자산운용의 전 세계 사업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다. 1978년 영국 셰필드대학(경제학과), 82년 서리대학(박사)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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