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빨강-초록 신호등’ 함께 켜는 금감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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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1 지난 6일 오후 서울 은행회관에서 ‘기업여신관행 개선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LIG건설과 삼부토건 사태로 드러난 은행의 대출 쏠림 현상과 대기업 계열사 우대 관행을 바로잡자는 취지다. 이 자리에선 지난 4월 금융감독원과 은행, 신용평가사들이 구성한 태스크포스(TF)의 논의 결과가 발표됐다. 요지는 은행의 산업분석 기능과 여신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위험 업종에 대한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고 여신한도를 넘어서는 대출은 아예 금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계열사에 대해서도 그룹의 지원 약속만으로 여신한도를 높이지 않도록 했다. 한마디로 ‘대기업 계열사나 호황 산업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출을 내주지 말라’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여신관리를 제대로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도 은행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이런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2 금감원은 지난달 30일 ‘신성장동력 금융지원을 위한 면책제도 운영방안’을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녹색수송시스템·관광 등 17개 업종에 대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금융회사와 담당 임직원에 대한 면책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이달부터 이들 산업에 대한 대출과 지급보증·어음할인 등 모든 직·간접적 자금지원에 대해선 규정·절차를 위반하거나 부실이 발생해도 되도록 책임을 묻지 않는다. “자금 지원의 필요성이나 과정의 합리정이 인정되거나 고의·중과실 또는 개인적 비리가 없으면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정기·수시 검사 때 검사반장에게 불문에 부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금융회사의 자체징계도 같은 기준을 따르게 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 4월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신성장동력 금융강화방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자금지원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의 삼색신호등이다. ‘제대로 따져 대출하라’는 건 은행에 정지신호다. ‘신성장동력 부문은 예외’라는 건 초록 화살표다. 두 개가 동시에 켜져 있으니 은행은 혼란스럽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신성장동력 산업의 대부분은 업황 부침이 심하고 정책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위험성이 크다”며 “은행 부실을 걱정하면서 이런 대출을 늘리라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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