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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지피지기 경영’ … 평창 두 번 울린 적장도 끌어안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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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조양호 평창유치위원장(오른쪽)이 6일(현지시간)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확정된 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으로부터 증명서를 받고 있다. [더반=연합뉴스]


최고라면 적과도 손잡았다. 밴쿠버와 소치를 도와 평창에 2연패를 안겼던 컨설팅 회사를 끌어안았다. 우군을 만들기 위해 영국에서 호소력 프레젠테이션 훈련도 받았다. 섬세함은 기본. 비행기 좌석 간 간격 수치까지 알고 있을 정도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얘기다. 항공사에서 40년간 체득한 경영기법이 평창 유치에 그대로 묻어났다. 그 덕에 강원도 부동산이 들썩거리고 기업들은 평창 특수 마케팅에 한창이다.

조양호(62) 한진그룹 회장은 숫자에 밝은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평소 비행기종마다 다른 이코노미·비즈니스 클래스의 좌석 간 거리를 ㎝ 단위로 기억할 정도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에는 그의 이 같은 섬세한 리더십이 한몫했다.

 조 회장은 2009년 9월 “세 번 실패는 없다. 그동안의 패배를 거울 삼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을 하겠다”며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수락했다. 이후 조 회장은 다시는 실패하지 않도록 세세함을 파고들었다.

 우선 “최고의 파트너와 손을 잡아야 유치 가능성을 높인다”며 전문 컨설팅 회사를 수소문했다. 그가 방점을 찍은 회사는 공교롭게도 평창의 경쟁자였던 미국 헬리오스파트너스였다. 미국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2010년 캐나다와 손을 잡고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2014년에는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을 유치해 평창을 2연패로 내몰았다. 유치위 내부에서 상당수가 “평창을 두 번이나 물먹인 회사와 협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반대했다. 이에 조 회장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우리의 단점을 제일 잘 아는 곳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고 설득해 헬리오스파트너스와 손을 잡았다. 유치위 관계자는 “조 위원장의 리더십은 우리의 단점을 알기 위해 과거 가장 강력한 적을 우리 편으로 만든 것”이라며 “헬리오스파트너스가 분석한 평창 정보가 유치위보다 더 상세한 부분도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호소력과 설득력 프레젠테이션 훈련도 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평창의 장점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외국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외국인 트레이너로부터 훈련받아야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수소문 끝에 영국으로 날아가 스피치 훈련을 소화했다. 이후 조 회장은 유치위 관계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 훈련은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이 된 것만큼 힘들고 재미있었다”고 털어놨다.

 조 회장은 항공사에 40년 근무하며 몸에 밴 고객의 감성을 사로잡는 서비스 경영도 접목시켰다. 지난해 2월 개최된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참가해 이 기간 동안 인사를 나눴던 70여 명의 IOC 위원 및 국제경기연맹 관계자 전원에게 직접 서명한 편지를 발송했다. 올 2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평창 겨울올림픽 IOC 실사단 응대에는 이 같은 감성 경영이 빛을 발휘했다.

 실사단을 감동시킨 것은 작은 정성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들의 활동상을 담은 8쪽짜리 화보집을 개인별로 전달했다. 당시 환송식에 참가한 대한항공 관계자는 “깜짝 사진 선물을 받은 실사단이 ‘원더풀’을 연발하며 조 회장의 감성에 감탄을 했다. 이후 조 회장을 한 번이라도 만난 IOC위원들은 ‘프렌드’라고 부르며 우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장 취임 직전인 2009년 7월 싱가포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참석해서는 IOC 위원 전원과 OCA 의장을 만나 실패 원인을 청취했다. 그러곤 귀국하자마자 김포공항에서 헬기를 이용해 평창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받은 자문을 현장으로 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였다. 서울~평창 간 영동고속도로 상공을 낮게 비행하면서 실제 선수들의 이동 경로를 육안으로 살폈다. 또 양양·강릉 공항과 선수단이 묵게 될 숙소 상공을 비행하면서 교통·숙박 인프라를 챙기고 꼼꼼하게 사진을 찍게 했다.

 조 회장은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로 확보한 인맥도 유치활동에 적극 활용했다. 대한항공이 주력인 세계 항공사 동맹 스카이팀 인맥이 대표적이다. 멕시코 항공사인 아에로멕시코의 CEO를 통해 멕시코 IOC위원을 소개받아 남미 스포츠 인맥을 넓혔고, 중동 IOC 위원들에게 다가설 때는 한진그룹이 2대 주주로 있는 에쓰오일의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평창 유치를 위해 그는 더반 IOC 총회까지 1년10개월 동안 34개의 해외 행사를 소화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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