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카메라 앵글 밖 여배우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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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조선의 나이 어린 여성들은 하등(何等)의 민족적으로나 계급적 의식이 없이 공상적 쁘띠부르주아 심리에서 스크린에 나타나는 미모와 고운 목소리에 유혹이 되어집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배우를 숭배하고 동경하게 되며 나중에 이르러서는 그 자신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참된 영화예술을 위해서의 그들이 아니고 배우를 숭배하고 동경하는 데서 생겨지는 영화인이니 무슨 예술적 양심이 있을 것이며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있을 것이겠습니까? (…) 조선에는 아직도 봉건적 사상이 농후하여 영화에 대한 이해가 일반적으로 보급되지 못하였으므로 인텔리 여성으로 영화예술에 진정한 이해를 가진 자는 환경에 얽매어서 진출치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김유영, ‘영화 여배우 희망하는 신여성군(新女性群)-조선영화 감독자의 입장으로서’, 『삼천리』, 1932.10)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최정희의 남편이기도 했던 김유영(金幽影·1908~1941)은 1930년대 한국 영화계의 여배우 문제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김유영은 한국 사회주의 예술 운동을 주도했던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맹원이다. 1934년 일제의 카프 맹원의 검거 사건(신건설사 사건)으로 일 년 반 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유랑’(1928), ‘혼가(昏街)’(1929), ‘화륜(火輪)’(1931) 등의 영화에서 핍박받는 조선의 민중·계급·노동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이처럼 영화가 사회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배우 역시 제대로 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민족이나 계급에 대한 의식이 있는 여성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배우 지망생들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나 허영심만을 가졌을 뿐 예술적 양심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각이 없음을 김유영은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현실 문제에 참여하는 배우는 그리 흔치 않다.

 최근 한 여배우가 여러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몸소 그 현장에 나서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위 ‘소셜테이너’들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녀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그녀 때문에 요즘 그녀가 출연하고 있는 모 드라마를 보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감독 김유영뿐 아니라 많은 대중들 또한 오래 기다려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카메라 앵글 속뿐 아니라 현실 속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여배우를 말이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