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 점심, 우린 마을회관서 먹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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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명곡마을 주민들이 5일 마을 경로당에 모여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군은 지난 5월부터 마을 공동급식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오종찬 프리랜서]


농민 유희대(57)씨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명곡마을에서 3만여㎥의 과수원을 지으면서 소 100여 마리를 키운다.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과수원과 축사·논·밭 등을 쉴새 없이 도느라 언제 해가 떨어지는지 모를 정도다. 주변에서 일손을 구하기도 힘들어 부인과 둘이서 종일 들판에서 살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끼니를 놓치는 때가 많다. 논·밭에서 집으로 와 점심을 먹고, 다시 들판으로 나가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그런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동네 경로당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함께 점심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5일의 경우 유씨는 과수원에서 감나무 순따기 작업을 하다, 부인(52)은 콩밭에서 잡초를 메다 들어 와 점심을 먹었다.

 유희대씨는 “음식을 준비하고 밥상을 차릴 필요가 없어 비용·시간 절감을 물론이고, 동네 주민들이 함께 모여 늘 왁자지껄하면서 잔칫집처럼 분위기가 좋아 밥맛도 더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농사 관련 정보나 아이들 교육 등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물론이고, 마을의 현안 문제까지 서로 얘기를 나누게 돼 주민들 단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완주군이 농번기 주민들을 위해 마을 공동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영농철 바쁜 일손을 덜어 주는 한편 주민들의 건강 증진, 이웃 간 교류에도 도움이 되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지자체는 조리비용을 지원하고, 쌀·반찬 등은 주민들이 조달한다. 공동급식은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을 이용한다. 완주군은 지난해 말 ‘농번기 농촌인력 마을 공동급식 지원 조례’를 만들어 음식조리비 명목으로 하루 4만원씩을 마을별로 지원한다.

 현재 비봉면 명곡마을 외에도 용진면 신지동, 소양면 인덕, 상관면 산정, 삼례면 학동, 구이면 구암 등 10개 마을에서 250~300명의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평균 20명 이상의 주민이 모일 수 있어야 하고 음식재료를 자체 조달할 수 있으면서 공동급식 시설이 있는 마을을 골랐다.

 명곡마을의 경우 23가구에 70여명의 주민들이 산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회사를 나가는 직장인들을 빼고 마을에 남는 20~30명의 주민들이 공동급식에 나온다. 주민들은 상추·배추·무·오이 등을 집집마다 하나씩 들고 온다. 조리는 식당 운영 경험이 있는 주민이 도맡는다. 홍향순(78)씨는 “혼자서 밥하고 반찬 챙기는 일이 쉽지 않아 고구마 등으로 간단하게 때우거나 건너뛴 적도 많았는데, 공동급식을 하게 되면서 이런 어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마을 공동급식 사업은 특히 가정 주부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인덕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정기녀(52·여)씨 “가족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공동급식을 하게 되니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모두가 만족”이라며 “특히 동네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경우 끼니 해결은 물론 밤새 별일 없는지 건강을 확인하는 계기로도 좋다”고 말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여름에 무더위와 땡볕 속에 농사를 지으면서 피곤에 지친 농민들의 부담과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생각에서 마을 공동급식 사업을 시작했다”며 “주민들의 반응이 좋고, 사업확대 요구가 많아 대상 마을을 추가하는 등 지원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글=장대석 기자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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