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발 맞으며 총부리 밀친 권혁 이병 … 더 큰 참사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4일 강화도 해병대 2사단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은 지난 3월 입대한 권혁(20) 이병의 군인정신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30여 명이 근무하는 해안가 경계 초소 200㎡의 부대에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오전 11시50분. 전날 야간 경계근무를 했던 김모(19) 상병이 새벽 경계근무를 끝낸 병사 10여 명이 잠을 자고 있던 생활관(내무반)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상병은 오전 10시 교대 근무자들이 총기를 맡기는 틈을 타 상황실 총기보관소에서 K-2 소총과 탄약 75발, 수류탄 1발을 훔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 상병은 K-2 소총을 동료 10여 명을 향해 난사했다. 이승훈 하사 등 3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박치현 상병은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총소리에 잠을 깬 권혁 이병이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던 김 상병에게 뛰어들었다. 권 이병은 총부리를 손으로 잡고 김 상병을 문밖으로 밀쳐내고 침대로 문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권 이병은 대퇴부 등에 4발의 총상을 입었다. 다행히 사타구니 쪽에 10㎝가량 상처가 났을 뿐 뼈는 상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조사결과 권 이병이 김 상병을 제압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권 이병의 제지를 받은 김 상병은 곧바로 생활관 바로 옆의 창고로 이동해 수류탄을 터뜨렸다. 해병대 관계자는 “창고에 다른 병사들은 없었기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상병은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고 김포시 뉴고려병원에서 1차 치료를 받은 뒤 헬기로 국군 수도병원을 거쳐 국군 대전병원으로 후송됐다. 해병대 관계자는 “김 상병은 ‘그냥 놔둬라. 죽겠다’는 말과 함께 치료를 거부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며 “김 상병이 격앙돼 있어 범행 동기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 상병은 대학 1년을 다니다 지난해 7월 해병대 1122기로 입대해 지난 2월 초소 경계에 투입됐다. 전역 9개월을 남겨놓고 있었다. 김 상병은 사고 당일 소대장과 면담했으며, 숨진 권승혁(20) 일병에게 가장 먼저 총기를 발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권승혁 일병의 사촌형 권욱(30)씨는 이날 밤 연합뉴스에 “김 상병이 사고 당일 소대장과 상담받으면서 ‘잘하겠다’고 말했다고 들었다”며 이날 오후 군 당국이 강화도 사고현장에서 유가족을 대상으로 가진 브리핑 내용 일부를 전했다. 이어 권씨는 “김 상병이 ‘관심사병’이었던 것 같다”면서 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해주는, 1주일 전 권승혁 일병과 친형(군 복무 중)과의 통화내용도 공개했다. 권씨는 이날 현장 방문 때 ‘가해자가 자격지심에서 그런 것 같다’는 내용의 부대 상관이 작성한 문건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해병대 사령관 음해’ 사단장 구속됐던 부대=이번 사건은 최근 해병대 수뇌부부터 시작된 군 기강 해이가 초래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5월 말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을 음해한 혐의로 이 부대의 상급부대인 해병 2사단장 박모 소장과 홍모 소장이 구속됐다. 지난달 15일엔 백령도의 해병 6여단에서 이모 상병이 자신의 개인 화기인 K-2 소총 실탄에 숨진 사건도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허술한 무기 관리체계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군 일각에선 지난해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해병대 훈련 강도가 높아지면서 해병대 전체의 피로도가 심해진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김수정·정용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