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원 쏟아부어 저축은행 불신 씻기 … 하지만 이게 끝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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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에서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저축은행 경영건전화 추진 계획을 브리핑 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상반기 각각 10조원씩 모두 20조원’.

올 한 해 저축은행을 구조조정하는 데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의 규모다.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넉넉지 않다. 금융위가 4일 ‘공적자금 추가 조성’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금융위는 올 초 부산저축은행 등 8개 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키면서 예금보험공사의 ‘공동계정’을 통해 15조원을 확보했다. 공동계정은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내는 예금보험료의 절반을 15년 동안 갹출해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쓰게 된다. 금융위는 또 예금보험공사의 구조조정기금 3조5000억원을 국회 승인을 받아 저축은행 몫으로 마련해 뒀다. 저축은행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으로 모두 18조5000억원을 마련한 셈이다.

 이 가운데 현재 쓸 수 있는 자금은 8조원가량에 불과하다. 예보는 영업정지된 8개 저축은행의 예금자 가지급금으로 공동계정에서 이미 4조8000억원을 지출했다. 현재 진행 중인 매각 과정에서 3조~4조원가량이 추가로 들어갈 예정이다. 대주주 횡령 등으로 구멍난 자산부족액을 예보가 메워 매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계정 15조원 가운데 6조2000억~7조2000억원가량만 남는다는 얘기다. 구조조정기금은 2조1000억원이 남아 있다. 올 초 국회 동의를 받아 저축은행 구조조정용으로 조성된 3조5000억원 중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채권을 사주는 데 1조4000억원을 이미 썼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저것 빼고 나면 하반기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쓸 수 있는 돈은 8조3000억~9조3000억원인 셈이다. 하지만 구조조정기금은 PF채권 매입 등 부실자산 매각으로 용도가 한정돼 있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에 바로 지원할 수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하반기 구조조정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돈은 공동계정에 남아 있는 6조2000억~7조2000억원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돈 쓸 곳은 넘쳐난다. 무엇보다 저축은행 전체에 대한 경영진단이 끝나는 9월 말이면 일부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가 불가피하다.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미만이어서 잠재부실 위험이 있다고 분류되는 곳은 10개 안팎이다. 일부는 대주주 증자 등 자구노력을 해 이 비율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몇 군데는 8%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 큰 변수는 저축은행 전체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다. 금융당국 내에선 “지금 나와 있는 숫자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금융당국이 제대로 장부를 들여다보면 저축은행들의 BIS 비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시장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의외의 탈락자’가 속출할 수 있는 것이다. 당국과 저축은행 업계에선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비슷한 8개 안팎이 문을 닫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문닫는 저축은행 숫자와 규모가 상반기와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8조~9조원가량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남은 돈은 하반기 문을 닫는 곳에 부산저축은행 같은 ‘대어’가 없다고 가정해야 빠듯하게 맞출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들을 간접 지원하는 데도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경영진단 결과 BIS 비율이 5%를 넘어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곳엔 정책금융공사의 금융안정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량과 부실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는 저축은행들에 공적자금을 넣어 기본 체력을 확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부실로 판명되지 않은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축은행 부실의 깊이와 정치적 휘발성에 금융당국이 얼마나 놀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융안전기금의 투입액수는 수천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경영진단 결과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판정된 저축은행들에 대주주 증자만큼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매칭펀드 방식을 검토 중”이라며 “저축은행의 절반이 여기에 해당돼 자본의 30%를 증자한다고 가정해도 공적자금 투입은 30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계산법을 적용하면 액수가 커진다. 현재 전체 저축은행의 BIS비율은 평균 7.57%다. 이를 1%포인트 끌어올리려면 65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 경영진단 결과 저축은행들의 BIS 비율이 3%포인트가량만 하락한다고 가정해도 이를 다시 돌려놓으려면 2조원가량을 증자해야 한다. 이 중 절반을 공적자금으로 채운다면 1조원이 필요하다. 금융위는 구조조정기금을 통한 PF 부실채권 매입도 계속할 방침이다. 결국 저축은행 부실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비용이 올 한 해에만 2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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