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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물 위에 뜬 배’ 같은 중국공산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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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시리즈 취재를 위해 지난달 ‘혁명 홍도(紅都)’로 불리는 산시(陝西)성 옌안(延安)과 장시(江西)성 징강산(井崗山)에 갔었다. 특히 옌안은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대장정 이후 13년간 머문 중공의 대표적 혁명 근거지다. 지금은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석유·석탄·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신흥 자산계급들이 밤마다 고급 술집에서 3만 위안(약 500만원)짜리 양주 루이13세에 취해 유행가를 열창하는 곳으로 변했다. 속을 보자면 자본주의 도시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대낮에는 역시 사회주의 혁명의 성지처럼 경건했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오타산(寶塔山)에서 붉은 옷을 입은 순례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마오가 개사한 홍가(紅歌·혁명가요)를 고전음악처럼 장중하게 불러댔다. “공산당이 없다면 신중국은 없다(沒有共産黨 就沒有新中國).”

 90년 전 마오를 비롯해 불과 50여 명으로 창당한 중공의 시작은 초라했다. 12명의 당 대표가 상하이(上海)에서 개최한 제1차 당 대회도 순조롭지 못했다. 프랑스 경찰의 단속을 피해 대표들은 자싱(嘉興) 난후(南湖)에 배를 띄우고 가까스로 대회를 마쳤다. 홍색 영화 ‘건당위업(建黨偉業)’은 1911년 쑨원(孫文·손문)이 주도한 신해혁명부터 21년 중공 창당까지를 극적으로 그려냈다. 영화에서 중공을 물 위에 뜬 한 척의 배로 표현한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민심으로 상징되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재주복주(載舟覆舟)의 무서운 진리를 압축적으로 묘사했다.

 물 위에서 태어난 중공은 태생적으로 ‘인민에 대한 서비스’를 내세워 민심과 권력을 얻었다. 세포 분열로 세계 최대인 8000만 명의 당원을 확보했고, 장기집권 중이다. 마오가 주창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에 따라 중국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중국에 맞는 해법을 찾기 위해 끝없는 학습과 변신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명한 정당들이 명멸해온 한국의 정당사에 비춰보면 중공은 장수 정당의 자격을 갖췄다. 그런데도 중공 지도자들은 창당 100주년(2021년)과 건국 100주년(2049년)에 시곗바늘을 맞춘 채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멀다(任重道遠)”는 논어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이 1일 열린 창당 90주년 기념 행사에서 한 연설에도 그런 겸손한 자세가 보였다. 그는 “당과 인민이 90년간 거둔 성취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만, 우리가 자만할 이유는 전혀 없다. 과거의 업적에 안주하면 절대 안 된다”며 위기의식을 고취했다.

 90년 만에 일엽편주(一葉扁舟)에서 거함(巨艦)으로 변신한 중공. 커진 영향력 때문에 앞으로 중공이 이끄는 중국이 어디로 갈지, 계속 순항할지 국제사회가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중국을 좌우할 중공의 이정표를 정확히 읽어내는 것은 이제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우리는 이미 “중공을 모르면 중국을 제대로 알 수 없다(不懂中共 就不懂中國)”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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