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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등록금 알바생의 안타까운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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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등록금을 벌려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참변을 당한 대학 휴학생의 비극은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엊그제 새벽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냉동기 점검작업 중 유독가스에 중독돼 숨진 서울시립대 휴학생 황승원(22)씨에게 한 학기 수백만원의 등록금은 어깨를 짓누르는 큰 부담이었다. 공장·식당을 오가며 한 달 100만원을 버는 어머니에게 등록금을 기댈 형편이 못됐다. 지난 5월 제대한 지 이틀 만에 “등록금은 내가 벌겠다”며 바로 일터로 나선 까닭이다. 그마저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다가 안타까운 일을 당하고 말았다.

 황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2009년 끝내 대학에 입학했다. “5년 내에 어머니 호강시켜 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자상하고 착한 아들이기도 했다. 그랬던 황씨가 등록금 부담에 힘겨워하다 학업의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스러지고 만 것이다.

 문제는 황씨처럼 등록금 부담에 고통받는 대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란 점이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대학생(49.2%)이 등록금 부담에 대처하기 위해 직접 아르바이트에 나서고 있는 지경이다. 더 심각한 건 돈만 많이 준다면 자기 몸을 실험 대상으로 쓰는 ‘마루타 알바’ 같은 위험한 일이나 성인PC방 같은 불법 알바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학생(52~58%)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알바에 매달려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정도를 넘어 위험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 중인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은 우선 이런 위기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 재정 지원을 통한 일률적인 등록금 인하나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세우는 건 표를 의식한 선심성 구호요, 포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 소득 수준을 무시한 전면적인 반값 등록금은 공정성 측면에서도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반값 등록금이 성사되면 기업들의 임직원 자녀 등록금 지원 부담이 절반으로 준다. 현대자동차 등 5대 대기업만 따져도 한 해 1000억원 가까이 줄어든다고 한다. 국민 세금으로 대기업 주머니를 채워주는 꼴이다. 지난 10년간 고소득층은 소득 증가 대비 등록금 지출 비중이 오히려 줄었는데도 똑같이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등록금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부 재정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규모와 지속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우선 순위를 따져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학생에게 일률적으로 등록금을 낮춰주기보다는 우선 저소득층 학생 중심으로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 제2, 제3의 ‘황승원’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정치권과 정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 대안을 서둘러 마련하기 바란다.